최윤하 (23) : 대한대 건축학과 4학년
김하늘 (23) : 대한대 건축공학과 4학년
문국희 (23) : 대한대 건축공학과 4학년
박영환 (23) : 대한대 건축학과 4학년
황해리 (21) : 명화여대 영어과 2학년
황영철 (23) : 윤하의 고교 동창. 황해리의 친오빠.
윤은경(25) : 황영철의 여직원
신예진 (22) : 한경여대 미대. 2학년
박혜주(34) : 의정부 한정식집 앞마당 사장
권소라(28) : 가정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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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웰빙식품
[1]
한참을 자다가 나는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다. 예진이가 침대에서 내려가서 옷을 입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나도 일어나 앉으며 예진이를 불렀다.
"다 잤어?"
"어? 오빠 깼어? 자는데 미안해."
"왜 그래? 집에 가려고?"
"아이. 내가 옷을 다 벗고 있잖아. 창피해서 .."
"너만 벗었니? 나도 벗었는데 뭐가 창피해?"
"오빠랑 나랑 같아? 나는 여자잖아."
"그럼 기다려봐. 혹시 내 트레이닝복이 너한테 맞는 것이 있나 보자."
참나.
이미 일까지 치뤘는데, 옷 벗은 것이 창피하나니.
나는 화장실에 갔다가 옷방으로 가서 팬티와 티셔츠를 걸쳤다. 그리고 예진이에게 주려고 트레이닝복 윗도리와 사각팬티 한 장을 들고 나왔다.
예진이는 자기 옷을 입고, 혼자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와인을 마시고 있다. 나는 예진이에게 옷을 건네주고, 주방으로 가서 커피 메이커에 커피를 얹고 식탁에 앉아서 기다렸다. 그런데 예진이가 나에게 온다.
"이거 너무 작아서 안들어가."
사각팬티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입지 않는 목욕 가운을 주었다.
예진이는 옷을 다 벗고, 목욕 가운만 걸친다. 그리고 식탁으로 와서 나에게 백허그를 한다. 나는 예진이를 내 앞으로 오게 해서 내 무릎에 걸터앉게 했다. 그런데 목욕 가운을 허리까지 걷어올리고 맨살의 엉덩이로 앉게했다. 그녀의 목과 귀를 핥고 빨면서, 가운 속으로 손을 넣고, 그녀의 젖가슴과 엉덩이를 주물렀다.
"아이잉. .. "
"왜?"
"이제 고만 좀 주물러라."
그래도 커피가 끝날 때까지 나는 계속했다. 예진이가 자꾸 몸을 부르르 떤다. 젖꼭지를 비틀면서 잡아당기고, 젖가슴을 쥐고 비틀기도 했다. 엉덩이를 만지는 손은 허벅지와 등까지 쓰다듬으며 오르내렸다.
"왜 자꾸 맨살을 만지는데? 그렇게 만지면 좋아?"
"부드럽고, 너무 좋아. 싫은데 왜 만지겠니?"
"그러다가 이제 닳겠다."
그래도 예진이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예진이는 허리를 비틀고, 몸을 꼬면서, 약간 버팅기기는 하지만, 예진이는 한 마리의 순한 양이다. 완전 고분고분 그 자체이다. 그녀가 변한 것이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내 손이 예진이의 허벅지를 만지다가 그녀의 비밀스러운 곳으로 파고들면 또 몸을 비튼다. 그런데 키스를 멈추지는 않는다.
"아음. .. 하아앙. .. 왜 또? .. 하음. .."
커피가 끝나자 우리는 식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예진이는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왔다. 나는 예진이의 손을 잡고 다시 침대로 갔다.
이미 한차례 거친 파도를 탔으므로, 나는 이번에는 아주 침착하게 했다. 나는 예진이의 가운을 다시 벗기고, 온몸 구석구석을 혀로 핥으면서 빨았다. 그래도 예진이는 전혀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예진이는 이미 나를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예진이를 엎드리게 해서 목과 어깨, 그리고 겨드랑이까지 핥았다. 예진이는 자주 몸을 부르르 떤다. 등에서는 척추 마디마디와 갈비뼈 하나하나를 혀끝으로 마사지하는 것처럼 누르며 핥았다. 나는 스스로 침착하자고 몇번이고 다짐하면서 정성을 다했다. 예진이의 나신은 허리를 비틀면서 그야말로 싱싱한 한 마리 물고기처럼 퍼덕였다.
"크흐윽. .. 변태 오빠. .. 하윽. .. 좋아. .. 하악. .."
예진이의 무릎과 허벅지에서 그리고 그녀의 엉덩이까지 한 구석도 남김없이 핥았다. 그녀의 두 장의 꽃잎은 흠뻑 젖은 채로 맞붙어있다. 나는 혀로 그녀의 균열과 꽃잎을 갈랐다. 그녀의 꽃잎의 뒷면과 클리토리스를 입술로 비비면서 빨았다. 예진이가 쏟아내는 액체는 모두 빨아서 내 입으로 가져왔다. 그녀의 엉덩이를 들게해서 국화꽃에서 조개까지를 입술과 혀로 핥으며, 뽑아낼 것처럼 빨았다.
"하아아. .. 미치겠다고. .. 아흑. .. 왜 거기서 그래. .. 하아"
신예진의 신음 섞인 말소리가 이제는 완전히 허스키해져버렸다. 신예진은 몸이 굳으며 경련을 일으키듯 부르르 떤다.
"변태야. 거기를 빨면 안더러워?"
"전혀. 좋기만 하구만 뭐가 더럽다고. .."
"진짜아. .."
내가 핥고 빠는 것을 예진이가 싫어하기는 커녕, 지금은 약간 낯설어 하면서도 오히려 즐기는 듯하다.
나는 그녀를 눕혀놓고 그녀의 몸 위로 올라가자마자 바로 삽입하고, 젖가슴을 움켜쥔 채로 박았다. 펌핑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조개를 퍼덕거리면서 계속 뜨거운 물을 쏟아낸다.
나는 누워있는 예진이의 하체를 옆으로 비틀게 하여 그녀의 한쪽 다리를 깔고 앉다시피하고, 반대쪽 다리는 손으로 받쳐들고 박았다. 그녀는 아예 몸을 옆으로 돌려서 세우더니, 손을 내게로 뻗어와서 내 팔과 가슴을 쓰다듬는다. 예진이가 반응하면서 나타내는 표정이나 몸놀림은 흥분에 들떠있는 것은 아니라, 약간 놀란 것 같다.
평상시에는 볼륨과 곡선이 나에게는 풍만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야해 보인다. 그녀가 가끔씩 나를 쳐다볼 때에 그녀의 눈길조차 끈적거리는 기분이다. 그녀가 나타내는 반응은 아직은 서툴다. 그래서 내 몸이 더 달구어진다. 나를 달군다. 만일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가 새로운 세계에서의 경험에 익숙해간다면, 그녀는 달인이 될 기질이 충분히 있어보인다.
내 사정이 임박해져서, 재빨리 신예진을 똑바로 눕게했다. 나는 그녀의 몸 위에서 몸부림을 치며 사력을 다해서 박아댔다. 예진이는 두 손으로 내 엉덩이를 잡고, 고개를 들어서 내 가슴을 빨고 핥았다. 그녀는 아프다는 말도 더 이상 하지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한 순간에 폭발해버렸다.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그녀에게 쏟아 붓고, 그녀는 내게 매달리면서 나를 미친 듯이 빨고 핥았다. 그리고 나와 신예진은 또 깊은 잠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예진이는 자면서도 계속 나에게 파고들었다.
[2]
그런데 그 사이에도 하늘이랑은 주차장에도 자주 가고, 또 몇번은 모텔에도 갔다. 하늘이와 예진이는 서로 알지도 못하고, 또 알게 될 가능성도 없기 때문에, 나는 안심하고 두 여자 사이를 오고 갔다. 나는 가금씩 얌심에 가책이라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대로 한번 가지데까지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천하에 나쁜 놈이다.
나와 신예진이 이렇게 하루 밤을 같이 보낸 후로는 그 다음에도 계속된다. 한번 붙은 불은 멈추지 않고, 꺼질 줄을 모르고 계속 탄다. 이상하게도 신예진에게는 갈수록 내 마음이 간다.
신예진은 시간만 있으면 자기 학교 실기실에서 밤 늦게까지 그림을 그린다. 나는 예진이를 밤 늦게 그녀의 학교에서 내 오피스텔로 태우고 와서 같이 잔다. 나는 아침에 혼자 일어나서 학교로 가고, 그녀는 계속 자는 날도 많아진다. 이런 날은 우리는 꼭 부부같고, 예진이는 내 아내 같고, 아침에 나 혼자 학교에 가는 나는 아내를 집에 두고 출근하는 기분이다.
김하늘은 내가 조금만 무심하면 바로 눈치를 채고 들고 일어난다. 김하늘은 내가 공부하는 도서관에 자주 나타난다.
이렇게 나는 하늘이와 신예진 사이를 오고가다 보니까 벌써 5월이고, 중간고사이다. 프레젠테이션과 시험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시험은 하늘이도, 예진이도 마찬가지이다. 이 때에는 전화나 카톡만 했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고 난 후에는 다시 마찬가지가 된다. 그 무렵 내 인생에는 혼돈과 방황이 격해진 기간이었다. 왜냐하면 이 둘 말고도 내 주변에는 여자가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대학 4학년이면 그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과거보다 더 심해진다. 나는 여성편력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문제가 달라지고, 나 스스로 이것은 정신병적인 증상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었다.
시험이 끝난 후에는 엘빙 식품에서 새로운 일이 계속 일어나고, 나는 1인3역을 하게 된다. 공부하면서, 회사 일도 하는 한편, 밤에는 침대에서 열락의 시간을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코피는 쏟지 않았다. 그 대신 잠은 엄청 많이 자게 된다. 시간만 있으면 졸고 잤으니까.
[3]
벌써 6월이다. 우리는 기말 기험 시험 준비로 한창 바쁠 때였다. 이 때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
윤은경은 내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식당을 방문하는 일을 계속하도록 다그친다. 그래도 나중에 시험치는 동안에 2주만 예외로 눈감아주었다. 그 무렵 황영철은 자기 인맥을 통하여 서울에만 20 개 정도의 업소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윤은경은 의정부시에 있는 "앞마당"이라는 한정식집으로 예약을 해두었다. 이 식당은 황영철의 선배가 단골로 가는 식당이라고 한다. 나와 윤은경은 꽃다발을 사들고 갔다.
이 식당의 사장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이고, 이름은 박혜주이다. 그녀의 외모는 세련, 이지적 그리고 섹시. 한마디로 에이뿔(A )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그녀는 작년에 이혼하고 혼자 산다고 한다. 다른 여사장들과는 다르게 첫인상은 엄청 도도하다. 그래서 박혜주 사장은 완전 내 스타일이고, 유난히 내 눈길을 끈다. 아무리 그래도 사업은 사업이니까 ..
그녀는 우리에게 식당을 운영하는 것과 김치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특별한 말은 없고, 어디서나 늘 듣는 얘기이다. 이제 나는 이런 얘기는 내용을 통째로 암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여사장에게서도 요염한 눈빛이 반짝일 때가 포착된다. 나는 그 동안 경험을 쌓아서 여자들이 나에게 보내는 눈빛을 어느 정도는 분석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긴다.
이야기가 끝나고 우리가 헤어질 무렵에, 그녀가 내게 물었다.
"사장님은 나이가 어린 것 같네? 아직 학생이죠?"
"와아아. 어떻게 아셨어요?"
"말하는 것도 그렇고, .. 내가 이 바닥에 있으면서 사람은 좀 봐요."
나는 내 학교, 전공, 학년을 말해주었다. 자기 여동생도 무슨 대학에 다닌다면서, 젊은 사람이 일하면서 공부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칭찬을 한다. 그런 얘기야 늘 듣는 얘기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그 다음에 한 말이다.
"그럼. .. 내가 식당 몇 군데를 소개할까? 생각 있어?"
"그렇게만 해 주시면, 저야 엄청 고맙죠."
"내가 알아보고 연락해줄께."
그로부터 며칠 후에 윤은경은 의정부의 앞마당 박혜주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었다면서, 나보고 그녀에게 전화를 하라고 했다.
내가 그녀에게 전화를 하자, 그녀는 나에게 요새 시험 때문에 얼마나 바쁘냐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기 여동생은 시험이라고 말만 하고, 공부도 안하고 싸돌아다닌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식당들이라면서 전화 번호 몇개를 문자로 날려주겠다고 했다.
"내가 미리 연락 해놓을테니까, 윤하사장이 직접 김치를 들고가서 그 사람들한테 인사도 하고, 맛보기로 하나식 던져줘. 다들 지금까지 고생하면서 착하게 살은 사람들이라 윤하사장한테 도움이 될거야."
"감사합니다. 시험 끝나면 꼭 찾아뵐게요."
"그래. 시험 잘 쳐."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이 일은 웰빙식품에게 엄청 잘 된 일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윤은경에게 했다. 내 말을 들은 윤은경의 눈초리가 심상치않게 변했다.
"그 사장님 자기한테 완전 까칠했었는데? 차도녀 아니었나?"
"맞아. 나중에는 조금 덜하기는 했어도, 그런 여자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네."
"조심해. 나중에 따로 밖에서 만나자고 할 지도 몰라."
"왜? 그럼 혹시 나한테 흑심이라도?"
"하아. .. 어쨌든 윤하씨가 드디어 사고를 치네."
"사고? 무슨 사고?"
"시끄럽고, 이렇게 되면 내일 당장 가보세요."
"내일은 오전 수업 때문에 .."
"그럼 오후에라도, 안되면 밤에라도.
적어도 한 군데는 꼭 가야 소개해준 사람에게 예의야."
"하필이면 시험때 이런 일이 들어오고 난리야?"
"원래 쓸만한 일은, 생길 때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동시에 터지거든요. 우리가 하는 일은 항상 이래. 그래도 이를 악물고 덤벼야지. 세상살이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처럼 술렁술렁 되는 줄 알아요?"
그녀는 나한테 짧은 연설을 한 후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식당 두 군데를 다음 날 저녁 시간으로 예액해놓고, 나와 같이 가기로 결정을 해버렸다.
그날 저녁에 이 사건은 황영철에게 알려졌고, 그의 입은 귀에 걸린다. 나나, 윤은경, 그리고 황영철도 처음에는 복덩어리가 굴러온 줄 알았다. 황영철은 대견하다는 듯이 내 어개를 툭툭 친다.
"윤하 너 사고칠 줄 알았다니까. 하하."
"이게 사고 친거니? 내가 사고뭉친가?"
"보면 몰라?"
"뭐라는 거야?"
"저거 바보 아니야?"
"과장님, 윤하씨가 앞뒤가 꽉 막혀서 답답하기는 해요. 하하."
다음 날 우리는 그 식당을 방문하여 인사를 하고, 의정부 앞마당의 박사장님 소개로 왔다는 말을 하면서, 김치를 건네주었다.
그런데 나는 다른 3개의 식당들이 궁금해서 공부에 몰입이 되지않는 것이다. 윤은경은 토요일 하루 날을 잡아서 모조리 해치운다면서 칼을 뽑았다.
나는 토요일에 신예진이 마트에 가야한다는 것을 일요일로 미루기까지 하고, 윤은경의 지휘에 따랐다. 이렇게 해서 의정부와 구리시에 있는 식당들에게 김치를 전달했다. 이런 배달은 냉동탑차로 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스 박스에 담아서 내 승용차로 한다. 가는 길에 윤은경이 나에게 황영철과 한 밀당질을 말해주었다.
"자기 요새 힘들지?"
"누나 요구사항이 조금 까다롭거든."
"미안해. 그치만 자기한테 이렇게 시키라고, 과장님이 나한테 시켰어."
"나보고 무슨 일을 또 하래?"
"그게 아니라. 자기한테 이런 것들을 다 가르쳐서 밖으로 데리고 다니라고 했다고"
"그럼 그게 누나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과장님이 사람 보는 눈은 나보다 빠르고 정확해. 내가 못당한다니까."
괘심한 녀석. 나한테는 말 한마디 없이 나를 이렇게 부려먹다니. 그러면서 윤은경의 손에 채찍을 쥐게 하다니.
맨 처음에 이야기하면서 나보고 바지사장으로 나서만 달라던 말은 뭔데? 하긴. .. 윤은경도 돌파구를 찾는 일은 대표인 내 일이라고 한 적이 있다. 저 둘은 분명 한 통속이다. 아무래도 저 둘의 밀당질에 내가 말려드는 느낌이다.
우리가 방문한 식당들은 하나같이 나를 칭찬하고, 우리 김치가 맛이나 색깔이 너무 좋고, 가격도 싸기 때문에, 우리 김치를 사용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 납품하는 회사와는 월말까지 거래를 계속해여야 한다면서, 그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윤은경은 월말이 되기 전에 미리 전화를 돌리고, 다음 달 부터는 우리가 그들에게 납품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다섯 개의 식당들이 웰빙식품에게 한 차례 위기를 몰고온 것이다.
문제는 그 식당들이 서울이 아니라, 서울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그 지역으로 배달을 하려면, 오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이렇게 되면 서울에서 납품 날짜와 시간을 맞추는 데에 문제가 된다.
또 다섯 군데의 식당이 모두 같은 날에 납품하도록 주문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요새 도로에는 정체현상이 출퇴근 시간이랑은 상관이 없다. 시도때도 없이 꼼짝없이 한두 시간을 길바닥에서 날리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차라리 지하철이 빠를 때도 있다. 이 나라의 전국 방방곡곡에서 택배와 배송업에 종사하시는 분들께 나는 진심으로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
"뭐야아. 이거야 말로 완전 계륵이네."
"과장님. 우리 윤하씨한테 맡겨요."
"은경이 너 요새 윤하한테 씌였니? 무턱대고 맡겨서 어쩌자고?"
"씌여? 아마 그럴껄요. 하하."
"씌였어. 확실해. 그것도 아주 단단히 씌였어."
그렇다고 해서 장기적으로 본다면 이들을 포기할 수도 없다. 한영철은 울며 겨자먹기로 하자고 나섰다. 필요하다면 냉동탑차를 한 대 더 마련하고, 배달원을 고용하겠다는 말도 했다. 그 대신에 당분간은 나와 윤은경이 승용차를 이용하여 이 배달을 맡으라고 했다. 그 새로운 고객들이 어떻게 나오는가 두고 보자는 것이다.
내 생활에 배달까지 겹쳐지면서 나에게는 이 때가 정말 힘든 기간이 시작된다.
윤은경은 첫번째 납품을 끝내고 나서, 나를 의정부의 "앞마당"에 데리고 갔다. 우리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꽃다발을 전달했다. 그 여주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한마디 한다.
"사장님만큼 아름다운 꽃은 아니지만. .."
"어머. 그래요? 하하하."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더 예쁜 꽃으로 사올게요."
"에이. 뭣하러 그래? 기왕 주려면, 그냥 김치로 줄 일이지 .."
"당연히 드려야죠. 이 다음 배달때 한박스 더 얹어드릴게요."
"그럼 이 꽃도 주고, 김치도 준다고?"
"예. 그렇습니다."
"자기 바람둥이지?"
"예?"
"아니야."
갑자기 웬 바람둥이? 선수가 선수를 알아보는 법인데, 선수인 그녀가 선수인 나를 알아봤나? 나도 그녀를 알아본 것 같은데. 은근히 표 안나게 씰룩거리는 엉덩이, 살짝 드러난 가슴골. 그런데 푸쉬업 브라이니 그 곡선은 얼마나 살인적인가? 이 여인이 고개를 살짝 비틀며 흘리는 눈웃음. 남자 여럿 잡았을 것 같다.
내 분석의 결과에 의하면 그녀의 이혼 사유는 그녀의 전 남편이 도저히 당해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 시작하면 남편의 최대 능력은 두 번 싸기, 그런데 아내의 요구사항은 싸는 횟수와는 상관없이 최소한 두 시간 동안 열 가지 이상의 체위로 박아줄 것. 그는 백기를 들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소개 받은 그들은 계속 다른 곳을 소개한다. 여기서 다단계 아닌 다단계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황영철이 냉동탑차 한대로 동분서주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냉동탑차 한 대를 더 마련하고, 직원을 고용해야 했다. 그러니가 말하지면, 김치를 팔기위해 써야 하는 비용이, 김치를 팔아서 생기는 몇푼 안되는 매출액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가는 것이 문제이다. 배보다 배꼽이 커진 것이다. 그 큰 냉동탑차에 김치 몇박스를 달랑 싣고 다녀야 하니, 정말 미칠 노릇이다. 차량 운영비에, 인건비에, .. 생각해보면 아찔한 일이다. 이 때 자금이 없으면 손들고 뻗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문제를 황영철이 돈을 풀어서 해결할 수 있었다. 황영철의 자금이 없이는 김치를 팔다가 망할 판국이었다. 아마도 이 일이 웰빙식품이 처음 맞은 위기라고 생각한다.
해마다 6월에는 배추값이 워낙 비싸서 금값이라고 한다. 김치 공장의 사장은 울상이다. 아직도 우리가 취급하는 물량이 너무 작다. 우리가 들여놓은 김치냉장고 세대 중에서 가동하는 것은 겨우 한 대 뿐이다.
우리는 포장용 종이박스에 웰빙식품이라고 적지만, 김치 공장에서는 김치에 자기네 상호의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김치이다.
우리는 우리 스티커를 따로 인쇄했다. 우리가 가져오는 김치에는 공장 스티커를 붙이지 말아달라고 김치 공장에 부탁을 하고, 우리가 직접 우리 스티커를 붙였다. 공장이 없는 설움이다. 스티커 한장 한장을 붙이면서 우리는 공장을 가질 날을 꿈꾸었다. 또 우리는 이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4]
황영철이 몇 달 동안 전단지를 열심히 뿌린 탓에, 드디어 6월의 어느 날 가정집으로부터 주문전화를 받았다. 그러니까 김치 배달을 시작한 후 두달이 지나서, 처음으로 업소가 아닌, 가정집으로부터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
윤은경이 이 소식을 알려왔을 때, 나는 처음에는 드디어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났으며, 신이 우리를 버린 것은 아니었다고 좋아했다. 그것은 황영철이나 윤은경도 마찬가지였다. 감동의 쓰나미 그 자체였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서 이 생각도 잘못이었음을 알게된다. 경험이 없는 우리에게 쓰디쓴, 그러나 훌륭한 명약이었다고나 할까?
주문한 고객은 권소라, 가정주부이다. 이 고객은 황영철의 인맥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오로지 그가 전단지 영업만으로 건진 고객이다. 그러니까 황영철은 일한 보람이 있다면서 기분이 엄청 좋아지고, 술마시러 가자는 것을 간신히 말려야 했다.
"이번 시험 끝나면, 나랑 여자 나오는 데에 가서 같이 마시자."
"진짜야?"
"그래. 약속."
"그 약속 안지키면 어쩔래?"
"혀 깨물고 죽을게."
"뭐야? 죽는다고? 진짜 어이없네.
야! 그럼 이 김치는 다 어쩌고?
또 해리가 이 사실을 알면, 해리한데 내가 죽을 지도 모르는데?"
"그니까 그 똑똑한 머리로 잘 생각해봐."
"그럼 안가겠다는 말이네? 죽으면 죽었지 못가겠다 이거니?"
"간다니까?"
"뭐라는 거야?"
"과장님. 이번에는 우리 윤하씨가 꼭 갈거니까 걱정 마세요."
"쟤는 또 저누므 우리 윤하씨."
"그럼 씌인걸 어쩌라구요!"
이 고객님께서 사시는 아파트는 건대 쪽에 있었는데, 윤은경과 나는 그 여성 고객에게 전화를 해서 내일 아침 11시에 도착하겠다고 알렸다.
다음 날 우리는 같이 차에 닸다. 윤은경이 운전을 한다. 단지 앞에 있는 상가에서 우리는 이 소중하신 고객님을 위하여 장미와 안개꽃으로 된 작은 꽃다발을 샀다. 나와 윤은경은 그 꽃집을 나서면서 꽃다발을 보고 감격스러워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있구나. .."
"윤하씨가 열심히 하니까 그렇지."
"내가 뭘 했다고. 누나나 영철이가 더 고생이지."
"순진한 자기야. 일이란 무식하게 고생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윤은경은 그 아파트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자기는 차 안에서 기다리겠다면서, 김치를 들고 아파트로 올라가는 일은 나 혼자 하라고 한다.
"누나는 왜 같이 안가는데?"
"우리 자기, 이번에는 진짜 홀로 서기."
"와아아. 진짜 치사하네."
"알았으니까 빨랑 내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차에서 내렸는데, 갑자기 엄청 떨리고 긴장된다는 것이다. 윤은경이 이러는 나를 눈치채버린다.
"첫 단추거든. 처음부터 자기가 완전 확실하게 해. 알았지?"
"그냥 갖다 주고, 김치 값을 받아서 오면 되지?"
"그건 기본이지. 그 일 말고 또 무슨 일이 있는가 잘 살피라고."
"알았어."
윤은경은 내 손을 잡고, 내 어깨를 툭툭 친다.
"윤하씨, 떨려?"
"어. 엄청"
"이러면 안되는데."
"그러게.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네. 왜 이러지?"
윤은경은 나를 안고 내 등을 토닥거린다. 내 뺨에 그녀의 입술이 와서 닿는 것이 느껴진다. 윤은경 같은 여자가 나를 안고 뽀뽀를 하는데 아무 느낌이 없다. 내가 지금 정상일까?
"자기야. 무슨 일인데 이렇게까지 긴장하는데?
지금까지 잘 했잖아?
우리 귀염둥이 자기가 이번에도 기적을 만들어 낼거야.
나는 자기를 믿어."
"그래. 고마워. 누나."
벼얼. ..
나는 심호흡을 몇번 한 뒤에 김치 박스를 손에 들었고, 그녀는 나를 엘리베이터 안에 밀어넣고 내게 손을 흔든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몇 번이나 호수를 확인했다. 벨을 누르고, 이유없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인터폰으로 말소리가 먼저 들린다.
"누구세요?"
"웰빙식품에서 김치배달 왔습니다."
지루한 시간이 십년처럼 흐른 뒤에 문이 열리고, 나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떤 부시시한 여자가 원피스를 걸치고 나를 맞는다. 칭얼거리는 아기를 안고 흔들고 있다.
물에 불린 것처럼 퉁퉁하게 불은, 그야말로 볼품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여자이다. 꽝몸매, 꽝얼굴, 꽝말투, 하나같이 꽝이다. 이런 꽝 때문에 최윤하가 긴장하고 떨었다니, 진짜 완전 어이상실이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가슴이 떨리는 것은 대중가요 가사이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떨리던 내가 차분해지고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녀가 꽝인 것이 차라리 잘 된 일이다.
나는 현관에서 그녀에게 인사하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거실을 힐끗 쳐다보았다. 완전 개난장판 그 자체다. 발을 옮겨 딛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살림도 꽝살림이다. 꽝은, 역시 하고 사는 것도 꽝이다.
그녀는 부끄러움 때문인지, 완전 고의로 내 눈길을 피한다. 나를 외면하려는 듯, 아기를 들여다보며, 말은 나에게 말한다.
"거기 두세요. 얼마죠?"
한 아기의 엄마이면서 쌀쌀맞기는? 저 정도면, 가는 곳마다 갑질하려 들고, 여기저기에서 왕싸가지 소리는 엄청 많이 듣고 다닐 여자같다. 꽝이 하는 짓 치고는 당연한 것 같지만, 나에게는 뭔가가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간 느낌이다.
나는 낮은 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처음으로 주문하셨으니까, 저희가 드리는 꽃입니다.
마음에 드실 지는 모르겠지만, 저희의 정성이니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그제서야 그녀는 내가 두 손으로 받쳐 든 김치박스 위에 얹혀있는 꽃다발을 힐끗 본다. 아무리 꽝이더라도, 여자는 여자니까, 꽃을 선물한다는 말에 관심은 쏠리나보다.
"어머머. 뭘 이렇게까지나. 고마워요."
"그럼, 이 김치는 어디로 가져갈까요? 5kg 짜리라서 드시려면 무거울텐데요."
"예? 무거워요? 그럼 이쪽 주방으로 .. 어떡해? 설거지를 아직 안했는데."
"괜찮습니다. 아기 키우시면 다 그러실텐데요.
우리 누나도 지금 4개월짜리 조카를 키우거든요."
"4개월요?"
나는 신을 벗고 거실로 들어섰다. 그녀의 뒤를 따라서 바로 모퉁이를 돌으니까 주방이다. 그녀에게서 짙은 모유 냄새가 난다. 왠지 낯설다.
"그러면 설거지 정도는 제가 해드릴가요?
저 이래보여도 설거지 하나는 확실하게 합니다.
식당에서 주방 보조 경력이 2년?"
나는 싱크대를 쳐다보는 순간 설거지를 해주겠다고 한 말을 진심으로 그리고 뼈저리게 후회했다. 이것은 지금 싱크대가 문제가 아니라, 주방 전체가 온통 아수라장이고, 전쟁터이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 같다. 이런 거실과 이런 주방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 저 위대하신 꽝녀께서는 아마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계속 그대로 갖다놓기만 한 것 같다. 남편은 가출했음이 틀림없다. 어떤 남편이 이런 곳을 홈 스위트홈이라고, 저녁에 퇴근하고 이리로 오냐?
나는 이 꽝녀의 살림 행각을 직접 체험하는 이 자리에서 여자랑 결혼은 절대로 하지않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 번 굳힌다. 그런다고 남자랑 할 수도 없고, ..
"아이. .. 됐어요. 식탁 위로 놓으세요. 얼마죠?"
"이 날씨에 그냥 두시면 맛이 .."
식탁?
그녀가 말하는 식탁이라는 곳은 벌써 수북하게 꽉찼다.
둘 자리가 없어서, 식탁을 치우고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치울 곳도 없다.
도대체 뭘 어쩌라고?
이제야 그녀가 나를 보며 민망해한다. 나는 김치 박스를 일단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아. .. 어떡해?"
"포기김치니까, 김치 통에 옮겨 담아서 김치냉장고에 두셔야 하거든요."
"직접 하시겠어요? 아니면 제가 해드려요?"
"내가 할게요. 당장 김치냉장고도 정리를 해야하는데.
그런데 얘가 계속 아파서, 잠도 안자고 자꾸 보채기만 하는 바람에 .."
곧 죽어도 자기가 한단다. 체면 때문이겠지. 벌써 적나라하게 다 까발려져 있는데도 그 알량한 자존심. 할 사람이 한다고 해야 믿지.
이 여자가 내 마누라라면 지금 당장 가정법원으로 끌고 갔을 것이다. 그런데 아기가 아프다는 말에 나는 생각을 바꿔먹는다. 그녀의 얼굴은 피로에 지쳐있지만, 그녀는 칭얼대는 아기를 안고 계속 흔들며 다독인다. 엄마라는 사명감은 있는 것 같다.
"김치 냉장고는 어디에 있죠?"
그녀는 할 수 없다는 듯, 김치냉장고 대신, 김치를 담을 김치통을 손으로 가리킨다. 나는 그 통의 뚜껑을 열었지만, 그 통 안에 김치를 담는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선은 김치통을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씻는 일은 지금 이 주방 상태에서는 불가능하고, 욕실로 가야했다. 그러면 욕실 상황은 또 어떨까? 안봐도 동영상이다. 나는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사모님. 욕실은요?"
"하아.. 거기도 엉망인데 . .."
"괜찮아요. 우리 누나네 집은 여기보다 더 심해요.
사흘에 한 번은 나랑 엄마가 가서 청소를 해야해요."
"어머. 그래요? 누나네는 왜 그래요? 거기도 아기가 아픈가?"
"잘은 모르는데, 4개월 된 조카가 밤낮없이 계속 울어요. 누나랑 매형이 정신병에 걸리려고 해요.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시체가 돼요. 매형은 회사에 가야 잠을 잔대요."
"와아. 우리 애랑 똑같네."
나는 김치통과 주방세제를 들고 그녀를 따라갔다. 몇 걸음 안되는 거리인데,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치 그녀가 나와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낸 내 친누나이기라도 한 것처럼.
물론 누나 얘기는 뻥이다. 내가 맏아들이다. 나는 지금 윤은경이 말한 대화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 뿐이다.
나는 너의 동지라는 것,
그리고 너는 지금 당장은 거부하지만, 나에게는 너와의 공감대가 이미 마련되어있다는 것.
물론 이 공감대는 사업상의 공감대일 뿐이다. 그이상은, 어떤 형태건, 내 인생에서 꽝녀와 공감대를 형성할 일은 이생에서는 결코 없을 것이다.
그녀가 가리키는 욕실의 문을 열었는데, 신은 정말 너무 가혹했다. 욕조는 빨랫감과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가득 찬 세탁기의 문은 열려있다. 변기는 언제 청소를 했는지. 냄새는 진동을 하고, 코를 찌른다. 나는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세제가 다 떨어졌는데, 아기 때문에 사러 나갈 수가 .."
나는 한쪽 구석에서 수도꼭지를 발견하고, 그 주변에 흩어진 물건들을 옆으로 밀어서 자리를 만든 후에 김치통을 씻었다. 그녀는 나를 넋을 잃은 사람처럼 쳐다보고 서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기가 더 이상 칭얼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결론은 아기가 개난장판인 집에만 있으니까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부모를 잘못 골랐다고 신에게 하소연을 하는 듯.
우리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식탁을 정리해서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도우미 문제를 내세워서 또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사모님. 도우미 한 분 불러드릴까요? 일 잘 하시는 분인데."
"누나네 집에서 일하시는 분인가요?"
"아니죠. 우리 누나는 형편이 좋지 않아서 도우미 쓸 입장이 못되거든요.
둘이 맞벌이 해도 월급 받으면 대출 갚느라고 .."
"우리도 사는게 그래요."
바로 지금 이 순간!
자기와 나 사이에 공감대가 있다는 것을 그녀가 스스로 밝힌 이 순간이 바로 내가 실수를 해야 할 싯점이다!
지금 터트려야 한다!
지금 이 난리통에서 그릇을 깰 수는 없으니까, 차라리 계속 거짓말을 해서 말로 저지르는 실수를 하기로 한다.
"이번에도 조카가 계획에 없었다는데, 콘돔에 펑크가 났었대나뵈요. 하하."
"예?"
"앗!"
"......"
실수와 놀라는 척을 했다. 이제부터 당황하고 횡설수설을 하면서 용서를 빌어야 한다. 과연 성공할까?
"사모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걸 어떻하지? 제가 친누나처럼 생각하고 누나한테 하듯이 .. 어쩌다 이런 실수를 ..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그럴 .."
"어머머. 애교 그만 부리세요. 지금 너무 귀엽거든요. 하하하."
그녀가 웃었다. 그것도 큰 소리로. 그 말은 먹혔다는 얘기다. 윤은경. 생각할수록 소름끼진다. 나를 이런 남자로 만들어놓다니.
"그게 아니라, 처음 뵙는 사모님께, 제가 너무 버릇없이, .."
"됐다니까 그러네. 아직 학생인가봐요?"
"예. 대한대 건축과 4학년입니다."
"어머머. 이 총각 완전 명품이네."
이렇게 내 거짓말은 완전 대박을 타트려서 그녀를 웃게했다. 그녀가 웃으니까 어색하던 분위기가 사라졌다. 이제 나는 그녀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힘들게 행주를 찾아내서 빨았다. 식탁으로 와서, 식탁에 자리를 만들고, 행주로 닦았다. 박스를 열어서 김치를 김치통으로 옮겨 담았다.
칼과 칼도마도 그리고 작은 플라스틱 통을 찾아서 세제와 물로 씻었다. 비닐 랩으로 된 장갑을 끼고, 식당에서 봐둔 것처럼 김치를 잘 썰어서 그 작은 통에 담았다. 이것은 당장 먹으라고 냉장고에 둘 생각이다.
나는 마치 내 집 일을 하듯이 했다. 가끔씩 그녀에게 물어보고, 그녀의 관심도 끌면서 ..
내가 냉장고를 열려고 손잡이를 잡는데, 그녀가 등 뒤에서 탄식한다.
"하아. .. 어떡해."
"괜찮다니까요."
그런데 그녀가 옳았고, 내가 틀렸다. 냉장고 안에 펼쳐진 경치는 절대로 괜찮은 것이 아니다.
그 순간, 나는 앓고있는 아기와, 그 아기를 돌보는 엄마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다. 그녀를 향한 나의 진심이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나는 내 마음 속에서 그녀에게 꽝이라는 생각을 햇던 것을 진심으로 뉘우쳤다.
나는 냉장고 안에 자리를 만들고, 일단 김치통을 넣고, 문을 닫았다.
"아시겠지만, 김치 맛은 유산균의 개수가 결정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 정도의 실내온도에서는 유산균의 증식이 워낙 빠르기 때문에, 맛이 쉽게 변합니다. 김치는 빨리 냉장고 안에 두셔야 .."
"예에. .."
그녀는 마치 중요한 사실을 알게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서도 "김치가 신김치가 된다" 고 하지 않고, "유산균"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그녀가 나를 주목하도록 신경을 썼다. 돈이 없으면 유식하기라도 해야지. 유식을 무기로 무식을 지배하기는 쉽다. 그것도 이 나라의 여자들은. 내 경험상 미국이나 유럽 여자들에게는 이 것이 잘 먹히지 않는다. 그녀들은 지식보다는 경험을 훨씬 중요시한다. 죤 듀우이의 도구주의 때문일 것이다.
김치냉장고 안에도 그녀가 시키는 대로 자리를 만들고 김치통을 넣었다. 그리고 나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이제는 그녀가 아예 말리지도 않는다.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뻔뻔한 근성이다. 그렇지만 저 뻔뻔함이 이 나라를 지금까지 위기에서 구하고, 이 나라를 지탱해오는데 어쩌겠는가? 그냥 애교로 봐주는 것으로 한다. 신예진이나 김하늘은 벌써부터 약간 뻔뻔하다. 하물며 이 권소라 고객님은 아기도 있는데 ..
나는 식탁 의자를 빼서 내 옆으로 놓고 그녀를 앉게 했다. 그녀는 나와 쉬지않고 계속 이야기를 한다. 마치 여러 해 동안 사람들과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고, 은둔형 왕따로 혼자 살던 사람 같다. 나도 같은 아줌마인 줄 알고, 나랑 수다를 떠는 것 같다.
설거지하는 기계에 그릇들을 하나 가득 넣어서 돌리고, 또 손으로도 직접 씻기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나를 말리다가, 나중에는 고무장갑을 기라고 한다. 그런데 그녀가 말하는 비닐장갑을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차라리 단지 앞 상가에 가서 사오는 것이 빠를 것 같다.
나는 맨손으로 그냥 했다. 집에서 엄마를 돕느라고 설거지를 하던 경험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그녀는 내 뒤에서 설거지를 정말 꼼꼼하게 잘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칭찬은 부처님도 웃게 하는 법. 나는 더 정성껏 해준다.
"요새 아빠께서는 어떠셔요?"
"지금 회사 일로 외국에 나가있어요. 동남아에."
"와아아. 그럼 혼자 이 힘든 일을 어떻게 해내세요? 고생을 너무 많이 하시네요."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녀를 인정해준다. 그녀가 감동을 받을만큼 시간도 준다.
"이런 동생이 있어서, 누나는 진짜 너무 행복하시겠다. 누나는 뭐하시는 분이세요?"
"고등학교 교사요."
"예? 그럼 나이 차이가 쫌 나겠네요?"
"제가 늦둥이라서요. 하하."
"그럼 누나 집도 엉망이겠네. 지금 우리집 보다는 훨씬 더 .."
"사흘에 한번 대청소를 해줘도, 여기 지금보다 더하다니까요."
"선생님이신데, 어련하실까. 무슨 과목이세요?"
"물리요."
"와아. .. 대단하신 .."
나는 설거지를 끝내고 냉장고도 대충 정리하는데, 냉장고는 또 왜 이렇게 큰지. 그런데 치운다는 것이 거의 버리는 수준이다. 유효기간이 지나고, 상하고, 등등이 한두 개가 아니다. 텅 빈 음식물 쓰레기 통이 이제는 넘칠 정도이다.
이렇게 하고 나니까 주방과 식탁에는 어느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보인다. 내가 들고 온 꽃도 꽃병에 꽂아서 식탁에 두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꽃병을 쳐다보며, 일부러 고개를 갸우뚱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에이 .."
"왜 그래요?"
"꽃이 누나만큼 안예쁘네."
"하아. .. 그 멘트 .."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쉰다.
"나 예뻐요?"
"엄청 예쁘죠."
"아이 참. 애 낳고, 아직 붓기도 다 안빠졌는데, .."
"누나. 여자가 가장 아름다울 때가 언제라고 생각해?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엄마와 아기와 서로 마주 보고 눈을 마주치면서 웃고 있을 때가 아닐까?
마치 둘 다 신이 이 세상에 내려보내신 천사같지 않아?
누나가 아기를 키우는 모습이 이따위 꽃이랑 비교가 되겠어?"
"하아. .. 윤하씨. .. 진짜 너무 고마워요."
"나는 내 생각을 말한 것 뿐인데, 뭐가 고맙다고 .."
"윤하씨 누나는 어떤지 몰라도, .. 나 요새 산후 우울증이 왔어요.
한 동안 손가락 하나 까딱을 못했거든요."
"누나. 왜 그래요?
아기를 보세요. 영민이라고 했나? 우리 영민이가 너무 예쁘잖아?
엄마가 행복해야 영민이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죠."
"하아. .. 행복. .. 그래요. ..
윤하씨는 총각이 못하는 말이 없네.
윤하씨 바람둥이지?"
뭔데?
여기서 바람둥이가 왜 나오지?
저 여성이 선수일 리는 없는데, 어떻게 알아보는거야?
내가 선수가 아닌가?
이제는 권소라 고객님께서 아기를 보는 표정이 달라진다. 아까는 피로에 찌든 얼굴로 아기를 봤었는데, 이제는 웃으며
"영민아. 얼룰루 까꿍!"
도 한다. 그런데 아기는 그런 엄마가 귀찮다는 듯, 고개를 홱 돌리고 눈을 감아버린다. 그래도 칭얼거리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냐?
"누나. 죄송한데요. 제가 다음 배달 때문에 지금 시간이 .."
"어머. 내 정신좀 봐. 김치 얼마라고 했죠? 요새 정신이 자꾸 .."
"오늘은 그냥 두고, 다음부터 돈내고 드세요."
"안돼요. 그럴 수는 없어요. 김치값 받으세요."
"아이. .. 이건 아무래도 도저히 .."
"윤하씨. 그건 아니야. 내가 동생한테 이러면 쓰나."
"그럼 누나가 또 주문하시면 올게요."
"그 전에라도 꼭 와. 내가 맛있는 것 해줄게, 오늘 빚은 갚아야지."
"누나도 참. 지금 영민이가 저런데, 무슨 요리를 한다고 그래?"
어느 새 나는 그녀를 누나라고 불러버렸고,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동생이라고 한다. 그녀는 고집을 부려서 억지로 김치 값을 현금으로 5만원 짜리 한 장을 주었고, 나는 그 돈을 지갑에 챙겼다. 그리고 내가 거스름돈을 주니까 그녀는 죽어도 안받는단다.
나는 그녀가 산후 우울증이라는 말을 듣고, 그녀의 집안 일을 더 해주고 싶었지만, 윤은경이 카톡을 벌써 엄청 보내기 때문에 조급해져서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시간도 벌써 두시간 가까이 지났다.
나는 녹초가 된 몸으로 그녀의 집을 나섰고, 그녀는 음료수 하나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면서, 문 앞에서 나와 작별했다.
나는 주차장으로 갔다. 그런데 윤은경의 차는 있지만, 그녀가 없다.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나 왔는데? 누나 어디 있어?"
"화장실도 그렇고 해서, 단지 밖에 상가야. 기다려."
윤은경이 돌아왔다. 그녀는 운전을 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하고, 내가 한 거짓말까지 이야기 했다. 물론 콘돔 펑크까지.
윤은경이 깔깔대고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하하하. 자기 때문에 미치겠다."
"왜 웃는데? 나는 도우미 짓을 죽어라고 하고 왔구만."
"자기는 완전 김치장사를 위해서 태어난 귀염둥이라니까.
이제 두고 봐. 언제 어떤 대박이 터지나."
그런데 이 아기 엄마 권소라 고객님께서는 자기 친척, 친구, 동창들에게 내 얘기를 하면서 우리 김치를 소개했다. 설겆이 해주고, 김치를 냉장고와 김치냉장고에 넣어주었다는 말까지 다했다고 한다.
그 결과로 이 아줌마 때문에 20개가 넘는 가정집이 순식간에 뚫렸다. 윤은경이 대박을 예측하는 것은 정확했다. 윤은경이나 황영철이나 .. 예측의 달인들이다.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던 황영철에 내게 물었다.
"그 아줌마랑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무슨 짓? .. 글쎄. .. 마음과 마음이 통했다고 해야 하나?"
"마음이 통했으면 혹시 몸도? 너 설마?"
"이게 진짜로 미쳤나? 누굴 뭘로 보고?"
"과장님. 우리 윤하씨 나쁜 마음 먹은 적 없어요. 내가 보증할게요. 하하."
"은경이는 또 언제부터 우리 윤하씨래?"
"요새 우리 윤하씨 하는 짓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시죠? 꽉 깨물어주고 싶어요. 하하."
"진짜 .. 완전 어이없네."
이 우주와 하늘에 두고 맹세하건대, 나는 그녀를 보고 변태같은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 눈에 비친 권소라 고객님은 아픈 아기를 돌보느라고, 심신이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한 가정 주부였을 뿐이다.
그 날 나는 정성을 다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상으로 그녀를 도왔다고 생각한다. 그 난장판에서 몸을 섞을 생각이나 한다면, 그게 인간인가?
나는 나를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황영철의 생각은 내 생각과는 약간 다르지만.
시험이 끝난 후에 나는 시간을 내서, 나는 그녀와 영민이를 차에 태우고 한강을 따라서 팔당까지 드라이브도 시켜주었다. 거기서 나는 그녀에게 스테이크를 사주었는데, 그녀는 내 스테이크까지 2인분을 거뜬하게 먹어치웠다. 나는 파스타를 먹었다.
그 다음은 당연히 주문이 너무 많아서 배달이 곤란해질 정도가 된다.
그런데, 가정집은 없소와는 다르다. 업소는 많은 양을 빨리 소비하지만, 가정집은 적은 양을 오래 소비한다. 더구나 영민이 엄마처럼 혼자 먹는 정도면 더 오래 걸린다. 요새는 김치냉장고 때문에 김치를 오래 보존한다. 가정집 배달은 바쁘기만 하고 실속은 별로인 것이 문제이다.
그래도 이제는 웰빙 식품이 사장, 배달사원 2명, 냉동탑차 두대이다. 물론 아직은 겉만 화려하고, 속은 텅 비어있는 것이 골치아픈 일이다. 오피스텔 얻은 비용을 제외하고도 황영철이 쏟아부은 돈은 벌써 1억 가까이 된다.
우리는 이 대로는 안된다는 말을 매일 하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 때 나에게 신예진의 "불멸의 3인방"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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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제 머리로 생각해서 쓴 허구입니다.
벌써 당장 김치장사하러 나가는 일이 생겼다는데, 나보고 우짜라구요? ㅋㅋ
** 추천수가 많으면, 제가 글을 잘 쓰는 줄로 스스로 착각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정말 잘 썼다고 생각하시면 추천을 누르시고,
아니면 누르지 말아주세요. 부탁합니다.
** 이 글에 반응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데, 너무 알바랑 비교되니까.
이 글을 쓰면서 자꾸 허접한 글을 쓴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내용이 마음에 드시는지, 제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1. 남주가 여학생들과 사귀는 내용
2. 김치장사 하는 과정
3. 둘 다
댓글을 유도하려는 수작이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그러니까
대답해주실 마음이 있으신 분만
간단히 번호로 1, 2, 3 중에 하나를 댓글로 남겨주실 수 있으신지요?
글 쓰면서 참고하겠습니다.
** 이번 얘기는 웰빙식품이 자라는 내용입니다. 많이 싱겁죠?
요약할 것도 별로 없네요. 제가 이번에 쓴 내용은 ..
우리가 살다보면 수많은 만남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내가 진심으로 상대방을 대했을 때 영민이 엄마처럼 나에게 크게 되돌아오는 것도 있고,
또 어떤 만남은 박사장처럼 생각지도 않은 만남이 행운을 만들어주기도 하지요.
그런데 당장은 그것이 행운이나 불행인것 처럼 보이지만, 뚜껑을 열고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기도 하죠. 그래서 모든 만남은 정성을 다해서 소중하게 그리고 길게 유지하는 것이 좋지않겠습니까?
뭐 이런 정도의 허접한 메시지를 담은 글입니다.
다음에는 쫌 빡씨게 써볼 생각이니까 두고 보십쇼. ㅋㅋ. ... - Ja"dore -
김하늘 (23) : 대한대 건축공학과 4학년
문국희 (23) : 대한대 건축공학과 4학년
박영환 (23) : 대한대 건축학과 4학년
황해리 (21) : 명화여대 영어과 2학년
황영철 (23) : 윤하의 고교 동창. 황해리의 친오빠.
윤은경(25) : 황영철의 여직원
신예진 (22) : 한경여대 미대. 2학년
박혜주(34) : 의정부 한정식집 앞마당 사장
권소라(28) : 가정주부
=*=*=*=*=*=*=*=*=*=
7. 웰빙식품
[1]
한참을 자다가 나는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다. 예진이가 침대에서 내려가서 옷을 입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나도 일어나 앉으며 예진이를 불렀다.
"다 잤어?"
"어? 오빠 깼어? 자는데 미안해."
"왜 그래? 집에 가려고?"
"아이. 내가 옷을 다 벗고 있잖아. 창피해서 .."
"너만 벗었니? 나도 벗었는데 뭐가 창피해?"
"오빠랑 나랑 같아? 나는 여자잖아."
"그럼 기다려봐. 혹시 내 트레이닝복이 너한테 맞는 것이 있나 보자."
참나.
이미 일까지 치뤘는데, 옷 벗은 것이 창피하나니.
나는 화장실에 갔다가 옷방으로 가서 팬티와 티셔츠를 걸쳤다. 그리고 예진이에게 주려고 트레이닝복 윗도리와 사각팬티 한 장을 들고 나왔다.
예진이는 자기 옷을 입고, 혼자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와인을 마시고 있다. 나는 예진이에게 옷을 건네주고, 주방으로 가서 커피 메이커에 커피를 얹고 식탁에 앉아서 기다렸다. 그런데 예진이가 나에게 온다.
"이거 너무 작아서 안들어가."
사각팬티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입지 않는 목욕 가운을 주었다.
예진이는 옷을 다 벗고, 목욕 가운만 걸친다. 그리고 식탁으로 와서 나에게 백허그를 한다. 나는 예진이를 내 앞으로 오게 해서 내 무릎에 걸터앉게 했다. 그런데 목욕 가운을 허리까지 걷어올리고 맨살의 엉덩이로 앉게했다. 그녀의 목과 귀를 핥고 빨면서, 가운 속으로 손을 넣고, 그녀의 젖가슴과 엉덩이를 주물렀다.
"아이잉. .. "
"왜?"
"이제 고만 좀 주물러라."
그래도 커피가 끝날 때까지 나는 계속했다. 예진이가 자꾸 몸을 부르르 떤다. 젖꼭지를 비틀면서 잡아당기고, 젖가슴을 쥐고 비틀기도 했다. 엉덩이를 만지는 손은 허벅지와 등까지 쓰다듬으며 오르내렸다.
"왜 자꾸 맨살을 만지는데? 그렇게 만지면 좋아?"
"부드럽고, 너무 좋아. 싫은데 왜 만지겠니?"
"그러다가 이제 닳겠다."
그래도 예진이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예진이는 허리를 비틀고, 몸을 꼬면서, 약간 버팅기기는 하지만, 예진이는 한 마리의 순한 양이다. 완전 고분고분 그 자체이다. 그녀가 변한 것이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내 손이 예진이의 허벅지를 만지다가 그녀의 비밀스러운 곳으로 파고들면 또 몸을 비튼다. 그런데 키스를 멈추지는 않는다.
"아음. .. 하아앙. .. 왜 또? .. 하음. .."
커피가 끝나자 우리는 식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예진이는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왔다. 나는 예진이의 손을 잡고 다시 침대로 갔다.
이미 한차례 거친 파도를 탔으므로, 나는 이번에는 아주 침착하게 했다. 나는 예진이의 가운을 다시 벗기고, 온몸 구석구석을 혀로 핥으면서 빨았다. 그래도 예진이는 전혀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예진이는 이미 나를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예진이를 엎드리게 해서 목과 어깨, 그리고 겨드랑이까지 핥았다. 예진이는 자주 몸을 부르르 떤다. 등에서는 척추 마디마디와 갈비뼈 하나하나를 혀끝으로 마사지하는 것처럼 누르며 핥았다. 나는 스스로 침착하자고 몇번이고 다짐하면서 정성을 다했다. 예진이의 나신은 허리를 비틀면서 그야말로 싱싱한 한 마리 물고기처럼 퍼덕였다.
"크흐윽. .. 변태 오빠. .. 하윽. .. 좋아. .. 하악. .."
예진이의 무릎과 허벅지에서 그리고 그녀의 엉덩이까지 한 구석도 남김없이 핥았다. 그녀의 두 장의 꽃잎은 흠뻑 젖은 채로 맞붙어있다. 나는 혀로 그녀의 균열과 꽃잎을 갈랐다. 그녀의 꽃잎의 뒷면과 클리토리스를 입술로 비비면서 빨았다. 예진이가 쏟아내는 액체는 모두 빨아서 내 입으로 가져왔다. 그녀의 엉덩이를 들게해서 국화꽃에서 조개까지를 입술과 혀로 핥으며, 뽑아낼 것처럼 빨았다.
"하아아. .. 미치겠다고. .. 아흑. .. 왜 거기서 그래. .. 하아"
신예진의 신음 섞인 말소리가 이제는 완전히 허스키해져버렸다. 신예진은 몸이 굳으며 경련을 일으키듯 부르르 떤다.
"변태야. 거기를 빨면 안더러워?"
"전혀. 좋기만 하구만 뭐가 더럽다고. .."
"진짜아. .."
내가 핥고 빠는 것을 예진이가 싫어하기는 커녕, 지금은 약간 낯설어 하면서도 오히려 즐기는 듯하다.
나는 그녀를 눕혀놓고 그녀의 몸 위로 올라가자마자 바로 삽입하고, 젖가슴을 움켜쥔 채로 박았다. 펌핑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조개를 퍼덕거리면서 계속 뜨거운 물을 쏟아낸다.
나는 누워있는 예진이의 하체를 옆으로 비틀게 하여 그녀의 한쪽 다리를 깔고 앉다시피하고, 반대쪽 다리는 손으로 받쳐들고 박았다. 그녀는 아예 몸을 옆으로 돌려서 세우더니, 손을 내게로 뻗어와서 내 팔과 가슴을 쓰다듬는다. 예진이가 반응하면서 나타내는 표정이나 몸놀림은 흥분에 들떠있는 것은 아니라, 약간 놀란 것 같다.
평상시에는 볼륨과 곡선이 나에게는 풍만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야해 보인다. 그녀가 가끔씩 나를 쳐다볼 때에 그녀의 눈길조차 끈적거리는 기분이다. 그녀가 나타내는 반응은 아직은 서툴다. 그래서 내 몸이 더 달구어진다. 나를 달군다. 만일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가 새로운 세계에서의 경험에 익숙해간다면, 그녀는 달인이 될 기질이 충분히 있어보인다.
내 사정이 임박해져서, 재빨리 신예진을 똑바로 눕게했다. 나는 그녀의 몸 위에서 몸부림을 치며 사력을 다해서 박아댔다. 예진이는 두 손으로 내 엉덩이를 잡고, 고개를 들어서 내 가슴을 빨고 핥았다. 그녀는 아프다는 말도 더 이상 하지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한 순간에 폭발해버렸다.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그녀에게 쏟아 붓고, 그녀는 내게 매달리면서 나를 미친 듯이 빨고 핥았다. 그리고 나와 신예진은 또 깊은 잠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예진이는 자면서도 계속 나에게 파고들었다.
[2]
그런데 그 사이에도 하늘이랑은 주차장에도 자주 가고, 또 몇번은 모텔에도 갔다. 하늘이와 예진이는 서로 알지도 못하고, 또 알게 될 가능성도 없기 때문에, 나는 안심하고 두 여자 사이를 오고 갔다. 나는 가금씩 얌심에 가책이라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대로 한번 가지데까지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천하에 나쁜 놈이다.
나와 신예진이 이렇게 하루 밤을 같이 보낸 후로는 그 다음에도 계속된다. 한번 붙은 불은 멈추지 않고, 꺼질 줄을 모르고 계속 탄다. 이상하게도 신예진에게는 갈수록 내 마음이 간다.
신예진은 시간만 있으면 자기 학교 실기실에서 밤 늦게까지 그림을 그린다. 나는 예진이를 밤 늦게 그녀의 학교에서 내 오피스텔로 태우고 와서 같이 잔다. 나는 아침에 혼자 일어나서 학교로 가고, 그녀는 계속 자는 날도 많아진다. 이런 날은 우리는 꼭 부부같고, 예진이는 내 아내 같고, 아침에 나 혼자 학교에 가는 나는 아내를 집에 두고 출근하는 기분이다.
김하늘은 내가 조금만 무심하면 바로 눈치를 채고 들고 일어난다. 김하늘은 내가 공부하는 도서관에 자주 나타난다.
이렇게 나는 하늘이와 신예진 사이를 오고가다 보니까 벌써 5월이고, 중간고사이다. 프레젠테이션과 시험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시험은 하늘이도, 예진이도 마찬가지이다. 이 때에는 전화나 카톡만 했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고 난 후에는 다시 마찬가지가 된다. 그 무렵 내 인생에는 혼돈과 방황이 격해진 기간이었다. 왜냐하면 이 둘 말고도 내 주변에는 여자가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대학 4학년이면 그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과거보다 더 심해진다. 나는 여성편력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문제가 달라지고, 나 스스로 이것은 정신병적인 증상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었다.
시험이 끝난 후에는 엘빙 식품에서 새로운 일이 계속 일어나고, 나는 1인3역을 하게 된다. 공부하면서, 회사 일도 하는 한편, 밤에는 침대에서 열락의 시간을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코피는 쏟지 않았다. 그 대신 잠은 엄청 많이 자게 된다. 시간만 있으면 졸고 잤으니까.
[3]
벌써 6월이다. 우리는 기말 기험 시험 준비로 한창 바쁠 때였다. 이 때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
윤은경은 내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식당을 방문하는 일을 계속하도록 다그친다. 그래도 나중에 시험치는 동안에 2주만 예외로 눈감아주었다. 그 무렵 황영철은 자기 인맥을 통하여 서울에만 20 개 정도의 업소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윤은경은 의정부시에 있는 "앞마당"이라는 한정식집으로 예약을 해두었다. 이 식당은 황영철의 선배가 단골로 가는 식당이라고 한다. 나와 윤은경은 꽃다발을 사들고 갔다.
이 식당의 사장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이고, 이름은 박혜주이다. 그녀의 외모는 세련, 이지적 그리고 섹시. 한마디로 에이뿔(A )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그녀는 작년에 이혼하고 혼자 산다고 한다. 다른 여사장들과는 다르게 첫인상은 엄청 도도하다. 그래서 박혜주 사장은 완전 내 스타일이고, 유난히 내 눈길을 끈다. 아무리 그래도 사업은 사업이니까 ..
그녀는 우리에게 식당을 운영하는 것과 김치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특별한 말은 없고, 어디서나 늘 듣는 얘기이다. 이제 나는 이런 얘기는 내용을 통째로 암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여사장에게서도 요염한 눈빛이 반짝일 때가 포착된다. 나는 그 동안 경험을 쌓아서 여자들이 나에게 보내는 눈빛을 어느 정도는 분석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긴다.
이야기가 끝나고 우리가 헤어질 무렵에, 그녀가 내게 물었다.
"사장님은 나이가 어린 것 같네? 아직 학생이죠?"
"와아아. 어떻게 아셨어요?"
"말하는 것도 그렇고, .. 내가 이 바닥에 있으면서 사람은 좀 봐요."
나는 내 학교, 전공, 학년을 말해주었다. 자기 여동생도 무슨 대학에 다닌다면서, 젊은 사람이 일하면서 공부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칭찬을 한다. 그런 얘기야 늘 듣는 얘기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그 다음에 한 말이다.
"그럼. .. 내가 식당 몇 군데를 소개할까? 생각 있어?"
"그렇게만 해 주시면, 저야 엄청 고맙죠."
"내가 알아보고 연락해줄께."
그로부터 며칠 후에 윤은경은 의정부의 앞마당 박혜주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었다면서, 나보고 그녀에게 전화를 하라고 했다.
내가 그녀에게 전화를 하자, 그녀는 나에게 요새 시험 때문에 얼마나 바쁘냐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기 여동생은 시험이라고 말만 하고, 공부도 안하고 싸돌아다닌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식당들이라면서 전화 번호 몇개를 문자로 날려주겠다고 했다.
"내가 미리 연락 해놓을테니까, 윤하사장이 직접 김치를 들고가서 그 사람들한테 인사도 하고, 맛보기로 하나식 던져줘. 다들 지금까지 고생하면서 착하게 살은 사람들이라 윤하사장한테 도움이 될거야."
"감사합니다. 시험 끝나면 꼭 찾아뵐게요."
"그래. 시험 잘 쳐."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이 일은 웰빙식품에게 엄청 잘 된 일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윤은경에게 했다. 내 말을 들은 윤은경의 눈초리가 심상치않게 변했다.
"그 사장님 자기한테 완전 까칠했었는데? 차도녀 아니었나?"
"맞아. 나중에는 조금 덜하기는 했어도, 그런 여자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네."
"조심해. 나중에 따로 밖에서 만나자고 할 지도 몰라."
"왜? 그럼 혹시 나한테 흑심이라도?"
"하아. .. 어쨌든 윤하씨가 드디어 사고를 치네."
"사고? 무슨 사고?"
"시끄럽고, 이렇게 되면 내일 당장 가보세요."
"내일은 오전 수업 때문에 .."
"그럼 오후에라도, 안되면 밤에라도.
적어도 한 군데는 꼭 가야 소개해준 사람에게 예의야."
"하필이면 시험때 이런 일이 들어오고 난리야?"
"원래 쓸만한 일은, 생길 때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동시에 터지거든요. 우리가 하는 일은 항상 이래. 그래도 이를 악물고 덤벼야지. 세상살이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처럼 술렁술렁 되는 줄 알아요?"
그녀는 나한테 짧은 연설을 한 후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식당 두 군데를 다음 날 저녁 시간으로 예액해놓고, 나와 같이 가기로 결정을 해버렸다.
그날 저녁에 이 사건은 황영철에게 알려졌고, 그의 입은 귀에 걸린다. 나나, 윤은경, 그리고 황영철도 처음에는 복덩어리가 굴러온 줄 알았다. 황영철은 대견하다는 듯이 내 어개를 툭툭 친다.
"윤하 너 사고칠 줄 알았다니까. 하하."
"이게 사고 친거니? 내가 사고뭉친가?"
"보면 몰라?"
"뭐라는 거야?"
"저거 바보 아니야?"
"과장님, 윤하씨가 앞뒤가 꽉 막혀서 답답하기는 해요. 하하."
다음 날 우리는 그 식당을 방문하여 인사를 하고, 의정부 앞마당의 박사장님 소개로 왔다는 말을 하면서, 김치를 건네주었다.
그런데 나는 다른 3개의 식당들이 궁금해서 공부에 몰입이 되지않는 것이다. 윤은경은 토요일 하루 날을 잡아서 모조리 해치운다면서 칼을 뽑았다.
나는 토요일에 신예진이 마트에 가야한다는 것을 일요일로 미루기까지 하고, 윤은경의 지휘에 따랐다. 이렇게 해서 의정부와 구리시에 있는 식당들에게 김치를 전달했다. 이런 배달은 냉동탑차로 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스 박스에 담아서 내 승용차로 한다. 가는 길에 윤은경이 나에게 황영철과 한 밀당질을 말해주었다.
"자기 요새 힘들지?"
"누나 요구사항이 조금 까다롭거든."
"미안해. 그치만 자기한테 이렇게 시키라고, 과장님이 나한테 시켰어."
"나보고 무슨 일을 또 하래?"
"그게 아니라. 자기한테 이런 것들을 다 가르쳐서 밖으로 데리고 다니라고 했다고"
"그럼 그게 누나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과장님이 사람 보는 눈은 나보다 빠르고 정확해. 내가 못당한다니까."
괘심한 녀석. 나한테는 말 한마디 없이 나를 이렇게 부려먹다니. 그러면서 윤은경의 손에 채찍을 쥐게 하다니.
맨 처음에 이야기하면서 나보고 바지사장으로 나서만 달라던 말은 뭔데? 하긴. .. 윤은경도 돌파구를 찾는 일은 대표인 내 일이라고 한 적이 있다. 저 둘은 분명 한 통속이다. 아무래도 저 둘의 밀당질에 내가 말려드는 느낌이다.
우리가 방문한 식당들은 하나같이 나를 칭찬하고, 우리 김치가 맛이나 색깔이 너무 좋고, 가격도 싸기 때문에, 우리 김치를 사용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 납품하는 회사와는 월말까지 거래를 계속해여야 한다면서, 그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윤은경은 월말이 되기 전에 미리 전화를 돌리고, 다음 달 부터는 우리가 그들에게 납품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다섯 개의 식당들이 웰빙식품에게 한 차례 위기를 몰고온 것이다.
문제는 그 식당들이 서울이 아니라, 서울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그 지역으로 배달을 하려면, 오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이렇게 되면 서울에서 납품 날짜와 시간을 맞추는 데에 문제가 된다.
또 다섯 군데의 식당이 모두 같은 날에 납품하도록 주문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요새 도로에는 정체현상이 출퇴근 시간이랑은 상관이 없다. 시도때도 없이 꼼짝없이 한두 시간을 길바닥에서 날리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차라리 지하철이 빠를 때도 있다. 이 나라의 전국 방방곡곡에서 택배와 배송업에 종사하시는 분들께 나는 진심으로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
"뭐야아. 이거야 말로 완전 계륵이네."
"과장님. 우리 윤하씨한테 맡겨요."
"은경이 너 요새 윤하한테 씌였니? 무턱대고 맡겨서 어쩌자고?"
"씌여? 아마 그럴껄요. 하하."
"씌였어. 확실해. 그것도 아주 단단히 씌였어."
그렇다고 해서 장기적으로 본다면 이들을 포기할 수도 없다. 한영철은 울며 겨자먹기로 하자고 나섰다. 필요하다면 냉동탑차를 한 대 더 마련하고, 배달원을 고용하겠다는 말도 했다. 그 대신에 당분간은 나와 윤은경이 승용차를 이용하여 이 배달을 맡으라고 했다. 그 새로운 고객들이 어떻게 나오는가 두고 보자는 것이다.
내 생활에 배달까지 겹쳐지면서 나에게는 이 때가 정말 힘든 기간이 시작된다.
윤은경은 첫번째 납품을 끝내고 나서, 나를 의정부의 "앞마당"에 데리고 갔다. 우리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꽃다발을 전달했다. 그 여주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한마디 한다.
"사장님만큼 아름다운 꽃은 아니지만. .."
"어머. 그래요? 하하하."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더 예쁜 꽃으로 사올게요."
"에이. 뭣하러 그래? 기왕 주려면, 그냥 김치로 줄 일이지 .."
"당연히 드려야죠. 이 다음 배달때 한박스 더 얹어드릴게요."
"그럼 이 꽃도 주고, 김치도 준다고?"
"예. 그렇습니다."
"자기 바람둥이지?"
"예?"
"아니야."
갑자기 웬 바람둥이? 선수가 선수를 알아보는 법인데, 선수인 그녀가 선수인 나를 알아봤나? 나도 그녀를 알아본 것 같은데. 은근히 표 안나게 씰룩거리는 엉덩이, 살짝 드러난 가슴골. 그런데 푸쉬업 브라이니 그 곡선은 얼마나 살인적인가? 이 여인이 고개를 살짝 비틀며 흘리는 눈웃음. 남자 여럿 잡았을 것 같다.
내 분석의 결과에 의하면 그녀의 이혼 사유는 그녀의 전 남편이 도저히 당해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 시작하면 남편의 최대 능력은 두 번 싸기, 그런데 아내의 요구사항은 싸는 횟수와는 상관없이 최소한 두 시간 동안 열 가지 이상의 체위로 박아줄 것. 그는 백기를 들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소개 받은 그들은 계속 다른 곳을 소개한다. 여기서 다단계 아닌 다단계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황영철이 냉동탑차 한대로 동분서주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냉동탑차 한 대를 더 마련하고, 직원을 고용해야 했다. 그러니가 말하지면, 김치를 팔기위해 써야 하는 비용이, 김치를 팔아서 생기는 몇푼 안되는 매출액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가는 것이 문제이다. 배보다 배꼽이 커진 것이다. 그 큰 냉동탑차에 김치 몇박스를 달랑 싣고 다녀야 하니, 정말 미칠 노릇이다. 차량 운영비에, 인건비에, .. 생각해보면 아찔한 일이다. 이 때 자금이 없으면 손들고 뻗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문제를 황영철이 돈을 풀어서 해결할 수 있었다. 황영철의 자금이 없이는 김치를 팔다가 망할 판국이었다. 아마도 이 일이 웰빙식품이 처음 맞은 위기라고 생각한다.
해마다 6월에는 배추값이 워낙 비싸서 금값이라고 한다. 김치 공장의 사장은 울상이다. 아직도 우리가 취급하는 물량이 너무 작다. 우리가 들여놓은 김치냉장고 세대 중에서 가동하는 것은 겨우 한 대 뿐이다.
우리는 포장용 종이박스에 웰빙식품이라고 적지만, 김치 공장에서는 김치에 자기네 상호의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김치이다.
우리는 우리 스티커를 따로 인쇄했다. 우리가 가져오는 김치에는 공장 스티커를 붙이지 말아달라고 김치 공장에 부탁을 하고, 우리가 직접 우리 스티커를 붙였다. 공장이 없는 설움이다. 스티커 한장 한장을 붙이면서 우리는 공장을 가질 날을 꿈꾸었다. 또 우리는 이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4]
황영철이 몇 달 동안 전단지를 열심히 뿌린 탓에, 드디어 6월의 어느 날 가정집으로부터 주문전화를 받았다. 그러니까 김치 배달을 시작한 후 두달이 지나서, 처음으로 업소가 아닌, 가정집으로부터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
윤은경이 이 소식을 알려왔을 때, 나는 처음에는 드디어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났으며, 신이 우리를 버린 것은 아니었다고 좋아했다. 그것은 황영철이나 윤은경도 마찬가지였다. 감동의 쓰나미 그 자체였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서 이 생각도 잘못이었음을 알게된다. 경험이 없는 우리에게 쓰디쓴, 그러나 훌륭한 명약이었다고나 할까?
주문한 고객은 권소라, 가정주부이다. 이 고객은 황영철의 인맥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오로지 그가 전단지 영업만으로 건진 고객이다. 그러니까 황영철은 일한 보람이 있다면서 기분이 엄청 좋아지고, 술마시러 가자는 것을 간신히 말려야 했다.
"이번 시험 끝나면, 나랑 여자 나오는 데에 가서 같이 마시자."
"진짜야?"
"그래. 약속."
"그 약속 안지키면 어쩔래?"
"혀 깨물고 죽을게."
"뭐야? 죽는다고? 진짜 어이없네.
야! 그럼 이 김치는 다 어쩌고?
또 해리가 이 사실을 알면, 해리한데 내가 죽을 지도 모르는데?"
"그니까 그 똑똑한 머리로 잘 생각해봐."
"그럼 안가겠다는 말이네? 죽으면 죽었지 못가겠다 이거니?"
"간다니까?"
"뭐라는 거야?"
"과장님. 이번에는 우리 윤하씨가 꼭 갈거니까 걱정 마세요."
"쟤는 또 저누므 우리 윤하씨."
"그럼 씌인걸 어쩌라구요!"
이 고객님께서 사시는 아파트는 건대 쪽에 있었는데, 윤은경과 나는 그 여성 고객에게 전화를 해서 내일 아침 11시에 도착하겠다고 알렸다.
다음 날 우리는 같이 차에 닸다. 윤은경이 운전을 한다. 단지 앞에 있는 상가에서 우리는 이 소중하신 고객님을 위하여 장미와 안개꽃으로 된 작은 꽃다발을 샀다. 나와 윤은경은 그 꽃집을 나서면서 꽃다발을 보고 감격스러워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있구나. .."
"윤하씨가 열심히 하니까 그렇지."
"내가 뭘 했다고. 누나나 영철이가 더 고생이지."
"순진한 자기야. 일이란 무식하게 고생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윤은경은 그 아파트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자기는 차 안에서 기다리겠다면서, 김치를 들고 아파트로 올라가는 일은 나 혼자 하라고 한다.
"누나는 왜 같이 안가는데?"
"우리 자기, 이번에는 진짜 홀로 서기."
"와아아. 진짜 치사하네."
"알았으니까 빨랑 내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차에서 내렸는데, 갑자기 엄청 떨리고 긴장된다는 것이다. 윤은경이 이러는 나를 눈치채버린다.
"첫 단추거든. 처음부터 자기가 완전 확실하게 해. 알았지?"
"그냥 갖다 주고, 김치 값을 받아서 오면 되지?"
"그건 기본이지. 그 일 말고 또 무슨 일이 있는가 잘 살피라고."
"알았어."
윤은경은 내 손을 잡고, 내 어깨를 툭툭 친다.
"윤하씨, 떨려?"
"어. 엄청"
"이러면 안되는데."
"그러게.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네. 왜 이러지?"
윤은경은 나를 안고 내 등을 토닥거린다. 내 뺨에 그녀의 입술이 와서 닿는 것이 느껴진다. 윤은경 같은 여자가 나를 안고 뽀뽀를 하는데 아무 느낌이 없다. 내가 지금 정상일까?
"자기야. 무슨 일인데 이렇게까지 긴장하는데?
지금까지 잘 했잖아?
우리 귀염둥이 자기가 이번에도 기적을 만들어 낼거야.
나는 자기를 믿어."
"그래. 고마워. 누나."
벼얼. ..
나는 심호흡을 몇번 한 뒤에 김치 박스를 손에 들었고, 그녀는 나를 엘리베이터 안에 밀어넣고 내게 손을 흔든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몇 번이나 호수를 확인했다. 벨을 누르고, 이유없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인터폰으로 말소리가 먼저 들린다.
"누구세요?"
"웰빙식품에서 김치배달 왔습니다."
지루한 시간이 십년처럼 흐른 뒤에 문이 열리고, 나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떤 부시시한 여자가 원피스를 걸치고 나를 맞는다. 칭얼거리는 아기를 안고 흔들고 있다.
물에 불린 것처럼 퉁퉁하게 불은, 그야말로 볼품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여자이다. 꽝몸매, 꽝얼굴, 꽝말투, 하나같이 꽝이다. 이런 꽝 때문에 최윤하가 긴장하고 떨었다니, 진짜 완전 어이상실이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가슴이 떨리는 것은 대중가요 가사이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떨리던 내가 차분해지고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녀가 꽝인 것이 차라리 잘 된 일이다.
나는 현관에서 그녀에게 인사하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거실을 힐끗 쳐다보았다. 완전 개난장판 그 자체다. 발을 옮겨 딛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살림도 꽝살림이다. 꽝은, 역시 하고 사는 것도 꽝이다.
그녀는 부끄러움 때문인지, 완전 고의로 내 눈길을 피한다. 나를 외면하려는 듯, 아기를 들여다보며, 말은 나에게 말한다.
"거기 두세요. 얼마죠?"
한 아기의 엄마이면서 쌀쌀맞기는? 저 정도면, 가는 곳마다 갑질하려 들고, 여기저기에서 왕싸가지 소리는 엄청 많이 듣고 다닐 여자같다. 꽝이 하는 짓 치고는 당연한 것 같지만, 나에게는 뭔가가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간 느낌이다.
나는 낮은 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처음으로 주문하셨으니까, 저희가 드리는 꽃입니다.
마음에 드실 지는 모르겠지만, 저희의 정성이니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그제서야 그녀는 내가 두 손으로 받쳐 든 김치박스 위에 얹혀있는 꽃다발을 힐끗 본다. 아무리 꽝이더라도, 여자는 여자니까, 꽃을 선물한다는 말에 관심은 쏠리나보다.
"어머머. 뭘 이렇게까지나. 고마워요."
"그럼, 이 김치는 어디로 가져갈까요? 5kg 짜리라서 드시려면 무거울텐데요."
"예? 무거워요? 그럼 이쪽 주방으로 .. 어떡해? 설거지를 아직 안했는데."
"괜찮습니다. 아기 키우시면 다 그러실텐데요.
우리 누나도 지금 4개월짜리 조카를 키우거든요."
"4개월요?"
나는 신을 벗고 거실로 들어섰다. 그녀의 뒤를 따라서 바로 모퉁이를 돌으니까 주방이다. 그녀에게서 짙은 모유 냄새가 난다. 왠지 낯설다.
"그러면 설거지 정도는 제가 해드릴가요?
저 이래보여도 설거지 하나는 확실하게 합니다.
식당에서 주방 보조 경력이 2년?"
나는 싱크대를 쳐다보는 순간 설거지를 해주겠다고 한 말을 진심으로 그리고 뼈저리게 후회했다. 이것은 지금 싱크대가 문제가 아니라, 주방 전체가 온통 아수라장이고, 전쟁터이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 같다. 이런 거실과 이런 주방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 저 위대하신 꽝녀께서는 아마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계속 그대로 갖다놓기만 한 것 같다. 남편은 가출했음이 틀림없다. 어떤 남편이 이런 곳을 홈 스위트홈이라고, 저녁에 퇴근하고 이리로 오냐?
나는 이 꽝녀의 살림 행각을 직접 체험하는 이 자리에서 여자랑 결혼은 절대로 하지않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 번 굳힌다. 그런다고 남자랑 할 수도 없고, ..
"아이. .. 됐어요. 식탁 위로 놓으세요. 얼마죠?"
"이 날씨에 그냥 두시면 맛이 .."
식탁?
그녀가 말하는 식탁이라는 곳은 벌써 수북하게 꽉찼다.
둘 자리가 없어서, 식탁을 치우고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치울 곳도 없다.
도대체 뭘 어쩌라고?
이제야 그녀가 나를 보며 민망해한다. 나는 김치 박스를 일단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아. .. 어떡해?"
"포기김치니까, 김치 통에 옮겨 담아서 김치냉장고에 두셔야 하거든요."
"직접 하시겠어요? 아니면 제가 해드려요?"
"내가 할게요. 당장 김치냉장고도 정리를 해야하는데.
그런데 얘가 계속 아파서, 잠도 안자고 자꾸 보채기만 하는 바람에 .."
곧 죽어도 자기가 한단다. 체면 때문이겠지. 벌써 적나라하게 다 까발려져 있는데도 그 알량한 자존심. 할 사람이 한다고 해야 믿지.
이 여자가 내 마누라라면 지금 당장 가정법원으로 끌고 갔을 것이다. 그런데 아기가 아프다는 말에 나는 생각을 바꿔먹는다. 그녀의 얼굴은 피로에 지쳐있지만, 그녀는 칭얼대는 아기를 안고 계속 흔들며 다독인다. 엄마라는 사명감은 있는 것 같다.
"김치 냉장고는 어디에 있죠?"
그녀는 할 수 없다는 듯, 김치냉장고 대신, 김치를 담을 김치통을 손으로 가리킨다. 나는 그 통의 뚜껑을 열었지만, 그 통 안에 김치를 담는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선은 김치통을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씻는 일은 지금 이 주방 상태에서는 불가능하고, 욕실로 가야했다. 그러면 욕실 상황은 또 어떨까? 안봐도 동영상이다. 나는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사모님. 욕실은요?"
"하아.. 거기도 엉망인데 . .."
"괜찮아요. 우리 누나네 집은 여기보다 더 심해요.
사흘에 한 번은 나랑 엄마가 가서 청소를 해야해요."
"어머. 그래요? 누나네는 왜 그래요? 거기도 아기가 아픈가?"
"잘은 모르는데, 4개월 된 조카가 밤낮없이 계속 울어요. 누나랑 매형이 정신병에 걸리려고 해요.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시체가 돼요. 매형은 회사에 가야 잠을 잔대요."
"와아. 우리 애랑 똑같네."
나는 김치통과 주방세제를 들고 그녀를 따라갔다. 몇 걸음 안되는 거리인데,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치 그녀가 나와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낸 내 친누나이기라도 한 것처럼.
물론 누나 얘기는 뻥이다. 내가 맏아들이다. 나는 지금 윤은경이 말한 대화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 뿐이다.
나는 너의 동지라는 것,
그리고 너는 지금 당장은 거부하지만, 나에게는 너와의 공감대가 이미 마련되어있다는 것.
물론 이 공감대는 사업상의 공감대일 뿐이다. 그이상은, 어떤 형태건, 내 인생에서 꽝녀와 공감대를 형성할 일은 이생에서는 결코 없을 것이다.
그녀가 가리키는 욕실의 문을 열었는데, 신은 정말 너무 가혹했다. 욕조는 빨랫감과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가득 찬 세탁기의 문은 열려있다. 변기는 언제 청소를 했는지. 냄새는 진동을 하고, 코를 찌른다. 나는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세제가 다 떨어졌는데, 아기 때문에 사러 나갈 수가 .."
나는 한쪽 구석에서 수도꼭지를 발견하고, 그 주변에 흩어진 물건들을 옆으로 밀어서 자리를 만든 후에 김치통을 씻었다. 그녀는 나를 넋을 잃은 사람처럼 쳐다보고 서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기가 더 이상 칭얼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결론은 아기가 개난장판인 집에만 있으니까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부모를 잘못 골랐다고 신에게 하소연을 하는 듯.
우리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식탁을 정리해서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도우미 문제를 내세워서 또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사모님. 도우미 한 분 불러드릴까요? 일 잘 하시는 분인데."
"누나네 집에서 일하시는 분인가요?"
"아니죠. 우리 누나는 형편이 좋지 않아서 도우미 쓸 입장이 못되거든요.
둘이 맞벌이 해도 월급 받으면 대출 갚느라고 .."
"우리도 사는게 그래요."
바로 지금 이 순간!
자기와 나 사이에 공감대가 있다는 것을 그녀가 스스로 밝힌 이 순간이 바로 내가 실수를 해야 할 싯점이다!
지금 터트려야 한다!
지금 이 난리통에서 그릇을 깰 수는 없으니까, 차라리 계속 거짓말을 해서 말로 저지르는 실수를 하기로 한다.
"이번에도 조카가 계획에 없었다는데, 콘돔에 펑크가 났었대나뵈요. 하하."
"예?"
"앗!"
"......"
실수와 놀라는 척을 했다. 이제부터 당황하고 횡설수설을 하면서 용서를 빌어야 한다. 과연 성공할까?
"사모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걸 어떻하지? 제가 친누나처럼 생각하고 누나한테 하듯이 .. 어쩌다 이런 실수를 ..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그럴 .."
"어머머. 애교 그만 부리세요. 지금 너무 귀엽거든요. 하하하."
그녀가 웃었다. 그것도 큰 소리로. 그 말은 먹혔다는 얘기다. 윤은경. 생각할수록 소름끼진다. 나를 이런 남자로 만들어놓다니.
"그게 아니라, 처음 뵙는 사모님께, 제가 너무 버릇없이, .."
"됐다니까 그러네. 아직 학생인가봐요?"
"예. 대한대 건축과 4학년입니다."
"어머머. 이 총각 완전 명품이네."
이렇게 내 거짓말은 완전 대박을 타트려서 그녀를 웃게했다. 그녀가 웃으니까 어색하던 분위기가 사라졌다. 이제 나는 그녀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힘들게 행주를 찾아내서 빨았다. 식탁으로 와서, 식탁에 자리를 만들고, 행주로 닦았다. 박스를 열어서 김치를 김치통으로 옮겨 담았다.
칼과 칼도마도 그리고 작은 플라스틱 통을 찾아서 세제와 물로 씻었다. 비닐 랩으로 된 장갑을 끼고, 식당에서 봐둔 것처럼 김치를 잘 썰어서 그 작은 통에 담았다. 이것은 당장 먹으라고 냉장고에 둘 생각이다.
나는 마치 내 집 일을 하듯이 했다. 가끔씩 그녀에게 물어보고, 그녀의 관심도 끌면서 ..
내가 냉장고를 열려고 손잡이를 잡는데, 그녀가 등 뒤에서 탄식한다.
"하아. .. 어떡해."
"괜찮다니까요."
그런데 그녀가 옳았고, 내가 틀렸다. 냉장고 안에 펼쳐진 경치는 절대로 괜찮은 것이 아니다.
그 순간, 나는 앓고있는 아기와, 그 아기를 돌보는 엄마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다. 그녀를 향한 나의 진심이 그녀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나는 내 마음 속에서 그녀에게 꽝이라는 생각을 햇던 것을 진심으로 뉘우쳤다.
나는 냉장고 안에 자리를 만들고, 일단 김치통을 넣고, 문을 닫았다.
"아시겠지만, 김치 맛은 유산균의 개수가 결정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 정도의 실내온도에서는 유산균의 증식이 워낙 빠르기 때문에, 맛이 쉽게 변합니다. 김치는 빨리 냉장고 안에 두셔야 .."
"예에. .."
그녀는 마치 중요한 사실을 알게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서도 "김치가 신김치가 된다" 고 하지 않고, "유산균"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그녀가 나를 주목하도록 신경을 썼다. 돈이 없으면 유식하기라도 해야지. 유식을 무기로 무식을 지배하기는 쉽다. 그것도 이 나라의 여자들은. 내 경험상 미국이나 유럽 여자들에게는 이 것이 잘 먹히지 않는다. 그녀들은 지식보다는 경험을 훨씬 중요시한다. 죤 듀우이의 도구주의 때문일 것이다.
김치냉장고 안에도 그녀가 시키는 대로 자리를 만들고 김치통을 넣었다. 그리고 나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이제는 그녀가 아예 말리지도 않는다.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뻔뻔한 근성이다. 그렇지만 저 뻔뻔함이 이 나라를 지금까지 위기에서 구하고, 이 나라를 지탱해오는데 어쩌겠는가? 그냥 애교로 봐주는 것으로 한다. 신예진이나 김하늘은 벌써부터 약간 뻔뻔하다. 하물며 이 권소라 고객님은 아기도 있는데 ..
나는 식탁 의자를 빼서 내 옆으로 놓고 그녀를 앉게 했다. 그녀는 나와 쉬지않고 계속 이야기를 한다. 마치 여러 해 동안 사람들과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고, 은둔형 왕따로 혼자 살던 사람 같다. 나도 같은 아줌마인 줄 알고, 나랑 수다를 떠는 것 같다.
설거지하는 기계에 그릇들을 하나 가득 넣어서 돌리고, 또 손으로도 직접 씻기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나를 말리다가, 나중에는 고무장갑을 기라고 한다. 그런데 그녀가 말하는 비닐장갑을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차라리 단지 앞 상가에 가서 사오는 것이 빠를 것 같다.
나는 맨손으로 그냥 했다. 집에서 엄마를 돕느라고 설거지를 하던 경험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그녀는 내 뒤에서 설거지를 정말 꼼꼼하게 잘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칭찬은 부처님도 웃게 하는 법. 나는 더 정성껏 해준다.
"요새 아빠께서는 어떠셔요?"
"지금 회사 일로 외국에 나가있어요. 동남아에."
"와아아. 그럼 혼자 이 힘든 일을 어떻게 해내세요? 고생을 너무 많이 하시네요."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녀를 인정해준다. 그녀가 감동을 받을만큼 시간도 준다.
"이런 동생이 있어서, 누나는 진짜 너무 행복하시겠다. 누나는 뭐하시는 분이세요?"
"고등학교 교사요."
"예? 그럼 나이 차이가 쫌 나겠네요?"
"제가 늦둥이라서요. 하하."
"그럼 누나 집도 엉망이겠네. 지금 우리집 보다는 훨씬 더 .."
"사흘에 한번 대청소를 해줘도, 여기 지금보다 더하다니까요."
"선생님이신데, 어련하실까. 무슨 과목이세요?"
"물리요."
"와아. .. 대단하신 .."
나는 설거지를 끝내고 냉장고도 대충 정리하는데, 냉장고는 또 왜 이렇게 큰지. 그런데 치운다는 것이 거의 버리는 수준이다. 유효기간이 지나고, 상하고, 등등이 한두 개가 아니다. 텅 빈 음식물 쓰레기 통이 이제는 넘칠 정도이다.
이렇게 하고 나니까 주방과 식탁에는 어느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보인다. 내가 들고 온 꽃도 꽃병에 꽂아서 식탁에 두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꽃병을 쳐다보며, 일부러 고개를 갸우뚱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에이 .."
"왜 그래요?"
"꽃이 누나만큼 안예쁘네."
"하아. .. 그 멘트 .."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쉰다.
"나 예뻐요?"
"엄청 예쁘죠."
"아이 참. 애 낳고, 아직 붓기도 다 안빠졌는데, .."
"누나. 여자가 가장 아름다울 때가 언제라고 생각해?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엄마와 아기와 서로 마주 보고 눈을 마주치면서 웃고 있을 때가 아닐까?
마치 둘 다 신이 이 세상에 내려보내신 천사같지 않아?
누나가 아기를 키우는 모습이 이따위 꽃이랑 비교가 되겠어?"
"하아. .. 윤하씨. .. 진짜 너무 고마워요."
"나는 내 생각을 말한 것 뿐인데, 뭐가 고맙다고 .."
"윤하씨 누나는 어떤지 몰라도, .. 나 요새 산후 우울증이 왔어요.
한 동안 손가락 하나 까딱을 못했거든요."
"누나. 왜 그래요?
아기를 보세요. 영민이라고 했나? 우리 영민이가 너무 예쁘잖아?
엄마가 행복해야 영민이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죠."
"하아. .. 행복. .. 그래요. ..
윤하씨는 총각이 못하는 말이 없네.
윤하씨 바람둥이지?"
뭔데?
여기서 바람둥이가 왜 나오지?
저 여성이 선수일 리는 없는데, 어떻게 알아보는거야?
내가 선수가 아닌가?
이제는 권소라 고객님께서 아기를 보는 표정이 달라진다. 아까는 피로에 찌든 얼굴로 아기를 봤었는데, 이제는 웃으며
"영민아. 얼룰루 까꿍!"
도 한다. 그런데 아기는 그런 엄마가 귀찮다는 듯, 고개를 홱 돌리고 눈을 감아버린다. 그래도 칭얼거리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냐?
"누나. 죄송한데요. 제가 다음 배달 때문에 지금 시간이 .."
"어머. 내 정신좀 봐. 김치 얼마라고 했죠? 요새 정신이 자꾸 .."
"오늘은 그냥 두고, 다음부터 돈내고 드세요."
"안돼요. 그럴 수는 없어요. 김치값 받으세요."
"아이. .. 이건 아무래도 도저히 .."
"윤하씨. 그건 아니야. 내가 동생한테 이러면 쓰나."
"그럼 누나가 또 주문하시면 올게요."
"그 전에라도 꼭 와. 내가 맛있는 것 해줄게, 오늘 빚은 갚아야지."
"누나도 참. 지금 영민이가 저런데, 무슨 요리를 한다고 그래?"
어느 새 나는 그녀를 누나라고 불러버렸고,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동생이라고 한다. 그녀는 고집을 부려서 억지로 김치 값을 현금으로 5만원 짜리 한 장을 주었고, 나는 그 돈을 지갑에 챙겼다. 그리고 내가 거스름돈을 주니까 그녀는 죽어도 안받는단다.
나는 그녀가 산후 우울증이라는 말을 듣고, 그녀의 집안 일을 더 해주고 싶었지만, 윤은경이 카톡을 벌써 엄청 보내기 때문에 조급해져서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시간도 벌써 두시간 가까이 지났다.
나는 녹초가 된 몸으로 그녀의 집을 나섰고, 그녀는 음료수 하나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면서, 문 앞에서 나와 작별했다.
나는 주차장으로 갔다. 그런데 윤은경의 차는 있지만, 그녀가 없다.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나 왔는데? 누나 어디 있어?"
"화장실도 그렇고 해서, 단지 밖에 상가야. 기다려."
윤은경이 돌아왔다. 그녀는 운전을 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하고, 내가 한 거짓말까지 이야기 했다. 물론 콘돔 펑크까지.
윤은경이 깔깔대고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하하하. 자기 때문에 미치겠다."
"왜 웃는데? 나는 도우미 짓을 죽어라고 하고 왔구만."
"자기는 완전 김치장사를 위해서 태어난 귀염둥이라니까.
이제 두고 봐. 언제 어떤 대박이 터지나."
그런데 이 아기 엄마 권소라 고객님께서는 자기 친척, 친구, 동창들에게 내 얘기를 하면서 우리 김치를 소개했다. 설겆이 해주고, 김치를 냉장고와 김치냉장고에 넣어주었다는 말까지 다했다고 한다.
그 결과로 이 아줌마 때문에 20개가 넘는 가정집이 순식간에 뚫렸다. 윤은경이 대박을 예측하는 것은 정확했다. 윤은경이나 황영철이나 .. 예측의 달인들이다.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던 황영철에 내게 물었다.
"그 아줌마랑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무슨 짓? .. 글쎄. .. 마음과 마음이 통했다고 해야 하나?"
"마음이 통했으면 혹시 몸도? 너 설마?"
"이게 진짜로 미쳤나? 누굴 뭘로 보고?"
"과장님. 우리 윤하씨 나쁜 마음 먹은 적 없어요. 내가 보증할게요. 하하."
"은경이는 또 언제부터 우리 윤하씨래?"
"요새 우리 윤하씨 하는 짓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시죠? 꽉 깨물어주고 싶어요. 하하."
"진짜 .. 완전 어이없네."
이 우주와 하늘에 두고 맹세하건대, 나는 그녀를 보고 변태같은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 눈에 비친 권소라 고객님은 아픈 아기를 돌보느라고, 심신이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한 가정 주부였을 뿐이다.
그 날 나는 정성을 다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상으로 그녀를 도왔다고 생각한다. 그 난장판에서 몸을 섞을 생각이나 한다면, 그게 인간인가?
나는 나를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황영철의 생각은 내 생각과는 약간 다르지만.
시험이 끝난 후에 나는 시간을 내서, 나는 그녀와 영민이를 차에 태우고 한강을 따라서 팔당까지 드라이브도 시켜주었다. 거기서 나는 그녀에게 스테이크를 사주었는데, 그녀는 내 스테이크까지 2인분을 거뜬하게 먹어치웠다. 나는 파스타를 먹었다.
그 다음은 당연히 주문이 너무 많아서 배달이 곤란해질 정도가 된다.
그런데, 가정집은 없소와는 다르다. 업소는 많은 양을 빨리 소비하지만, 가정집은 적은 양을 오래 소비한다. 더구나 영민이 엄마처럼 혼자 먹는 정도면 더 오래 걸린다. 요새는 김치냉장고 때문에 김치를 오래 보존한다. 가정집 배달은 바쁘기만 하고 실속은 별로인 것이 문제이다.
그래도 이제는 웰빙 식품이 사장, 배달사원 2명, 냉동탑차 두대이다. 물론 아직은 겉만 화려하고, 속은 텅 비어있는 것이 골치아픈 일이다. 오피스텔 얻은 비용을 제외하고도 황영철이 쏟아부은 돈은 벌써 1억 가까이 된다.
우리는 이 대로는 안된다는 말을 매일 하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 때 나에게 신예진의 "불멸의 3인방"이 떠오른다.
=*=*=*=*=*=*=*=*=*=*=*=*=
**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제 머리로 생각해서 쓴 허구입니다.
벌써 당장 김치장사하러 나가는 일이 생겼다는데, 나보고 우짜라구요? ㅋㅋ
** 추천수가 많으면, 제가 글을 잘 쓰는 줄로 스스로 착각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정말 잘 썼다고 생각하시면 추천을 누르시고,
아니면 누르지 말아주세요. 부탁합니다.
** 이 글에 반응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데, 너무 알바랑 비교되니까.
이 글을 쓰면서 자꾸 허접한 글을 쓴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내용이 마음에 드시는지, 제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1. 남주가 여학생들과 사귀는 내용
2. 김치장사 하는 과정
3. 둘 다
댓글을 유도하려는 수작이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그러니까
대답해주실 마음이 있으신 분만
간단히 번호로 1, 2, 3 중에 하나를 댓글로 남겨주실 수 있으신지요?
글 쓰면서 참고하겠습니다.
** 이번 얘기는 웰빙식품이 자라는 내용입니다. 많이 싱겁죠?
요약할 것도 별로 없네요. 제가 이번에 쓴 내용은 ..
우리가 살다보면 수많은 만남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내가 진심으로 상대방을 대했을 때 영민이 엄마처럼 나에게 크게 되돌아오는 것도 있고,
또 어떤 만남은 박사장처럼 생각지도 않은 만남이 행운을 만들어주기도 하지요.
그런데 당장은 그것이 행운이나 불행인것 처럼 보이지만, 뚜껑을 열고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기도 하죠. 그래서 모든 만남은 정성을 다해서 소중하게 그리고 길게 유지하는 것이 좋지않겠습니까?
뭐 이런 정도의 허접한 메시지를 담은 글입니다.
다음에는 쫌 빡씨게 써볼 생각이니까 두고 보십쇼. ㅋㅋ. ... - Ja"dore -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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