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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3 01:16 865회 0건


** 오래 걸려서 죄송합니다. 바쁘기도 했지만, 이번 스토리를 쓰면서는 생각이 집중도 안되고, 도대체 글이 떠오르지가 않더군요. 돌대가리인가봅니다. .. - Ja"dore -


=*=*=*=*=*=*=*=*=*=*=



137. 나보다 강한 여자 최수희





[1]
최수희가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우리는 주차장을 천천히 나서서 차들의 흐름으로 끼어들었다. 토요일 저녁 7시의 거리는 한없이 느려터지고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도 히터 때문에 차 안은 금방 따뜻해졌다. 차에 그녀는 운전을 하면서 내게 물었다.



"자기, 저녁 안 먹었지? 어떻게 할까?"
"나는 아까 먹고 나와서 지금은 배가 별로 안 고파. 그런데 누나도 안 먹었잖아? 먹기는 먹어야지?"

"그럼. .. 우리 집에 가서 배달 음식 먹자. 어때?"
"좋을 대로 해. 아니면 가다가 누나네 상가에서 먹고 올라가도 되고."

"그럴까? 거기 패밀리 뷔페 레스토랑은 몇 달 전에 주인이 바뀌고 나서 분위기도 좋고 맛도 괜찮다던데."
"주인 바뀐 것이 몇 달 전인데, 아직 안 가봤어?"

"패밀리 레스토랑인데 어떻게 나 혼자 가냐? 쪽팔리게."
"좋아. 그럼 오늘은 거기로 가자."




우리는 최수희의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우리는 서로의 입술을 빨면서 키스하고 차에서 내였다. 밖은 차가운 날씨이다. 수능 추위가 반짝 추위였다면 날씨가 녹을 때도 됐겠지만, 아직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는 것 같다.

그 레스토랑은 단지 끝에 있는 도로변에 있어서 거리가 제법 된다. 그녀는 두꺼운 검은색 파커를 입고 있다. 검은 미니스커트 아래로 커피색 스타킹에 싸인 가늘면서도 약간 통통한 그녀의 두 다리가 주욱 뻗어있다. 다리만 해도 요염한 굴곡이기는 하지만, 회사 안에서는 몰라도 이렇게 밖을 걷기에는 너무 추워 보인다. 나는 최수희의 손을 잡아서 내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가 내 손을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이 꼭 잡는다. 그녀가 나를 쳐다보고 하얀 치열을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와앙. 기분 엄청 좋다."
"춥지?"

"약간 추운 것인데 어때서 그래? 이렇게 자기랑 손 잡고 걷는 것이 몇 달 만이야?"
"9월말에 같이 출장 갈 때였으니까, 벌써 한 달 반이 지났나?"

"그래. 자기는 요새 학교 다니면서 수능 친다고 엄청 빡시게 고생 했다며?"
"내가 이 나이에 아직 수능 공부나 하고. 하하."

"아무나 하냐? 자기니까 하지. 나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해."
"닥치면 다 하거든요. 하하."



항상 그랬지만, 저녁 8시이니까, 아파트 상가지만, 단지가 엄청 커서인지, 오늘도 상가의 거리는 제법 휘황찬란하다. 사람들이 거리를 만들고, 또 그 거리를 사람들이 지나간다. 거리는 낮이나 밤이나 밝고, 또 아직은 초저녁이어서인지 주변의 상인들도 제법 활기가 있어 보인다. 심한 경우에는 호객 행위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밝고 명랑하게 행복에 쩔어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가난과 피로에 쩔어 있는 사람도 제법 많을 것이다. 마음 속이 누군가를 향한 사랑과 기다림으로 넘치도록 채워진 사람도 있겠지만, 또 철두철미하게 무관심과 증오나 원망으로 일관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최수희와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때에는 다정한 연인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둘은 똑같이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일까?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잊혀져 갈 수도 있지만, 또 어떤 기억들은 갈수록 더욱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기억에서는 잊혀졌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영혼에는 치유되지 않는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최수희는 어떨까?




[2]
우리는 최수희가 말한 패밀리 뷔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최수희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홀 안에는 혼자 앉아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도 제법 눈에 띈다. 그래도 가족이나 연인, 또는 어떻게든 인연을 가진 이들이 점령한 테이블이 훨씬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이 식당 이름에 패밀리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가족에게는 할인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입장료가 혼자오면 1인당 7000원이지만, 가족이 같이 왔으면 1인당 5000원이다. 그러니까 오늘 나와 최수희는 혼자 온 것이 아니므로 가족으로 인정해준다. 우리는 10000원을 내고 입장했다.

최수희가 나를 보고 웃는다. 차가운 날씨에 밖을 걷다가 따뜻한 곳으로 들어와서인지, 하얗던 그녀의 뺨이 버얼겋다. 우리는 닭고기 볶음과 야채 요리를 먹었다.



"누나랑 나랑 가족이라고? 그럼 누군가랑 같이 오기만 하면 다 가족이야?"
"자기야. 나는 기분 엄청 좋거든? 그게 마음에 안 들어?"

"아냐. 나도 좋아."
"이 험한 세상을 왕따로 혼자 살지 말고, 서로 어울려서 인연을 만들고 같이 살으라는 의미에서 그렇대."

"그럼 누나도 다음 부터는 집에서 혼자 컵라면으로 때우지 말고, 여기 와서 먹어요. 혼자 온 사람들끼리 인연으로 뭉쳐서 같이 들어가면 되겠구만."

"뭐야아. 같이 들어와서 밥 먹는 인연? 하하."
"뭐. .. 거기서 더 발전할 수도 있지 않겠어? 누나 정도의 미모라면 어떤 남자도 누나가 그런 제안을 하면 절대 거절하지 못할 것 같은데. .. 하하."

"말도 안돼. 아무리 할인이 된다고 해도 어떻게 그러냐? 이런데 혼자 오기는 싫어. 청승맞고 처량하잖아? 자기랑 같이 온다면 또 모를까."

"최수희 고집 또 나온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내가 여기를 어떻게 자주 오냐?"
"자주는 말고 가끔이라도. .. 한달 반은 좀 심하고 .."

"누나가 엄청 삐졌구나. 뒤끝이 길어서인가?"
"삐지기는? 또 내가 무슨 뒤가 있다고 그래? 참나. .. 자기가 1인 3역을 한다고 바쁘다는데, 내가 도와줄 수도 없고 .. 뭘 어쩌겠어?"

"그건 그렇고. ..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봐. 아까 오후에 나 데리러 송실장이 아니라 왜 누나가 온거지? 와서 보니까 송실장 별로 안 바쁘던데?"
"그야 뭐. .. 그냥. .. 처음에 송실장이 간다고 했었거든. 내가 집에 잠시 갈 일이 있으니까, 내가 자기한테 들러서 온다고 했어. 자기가 온다는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벌렁거리면서 일이 손에 안 잡혔서 그랬어. 왜 그러는데? 무슨 문제 있어?"

"문제는 무슨 문제? 괜찮아. 그냥 궁금해서 .. 누나. 와인 한 잔 안 할래요?"
"와인? 알코올 음료는 돈을 따로 더 내야 하거든. 그러지 말고 집에 있는 와인 마시자. 자기가 안 오니까, 지난 번에 사다 놓은 와인이 마시지 않고 그대로잖아."

"혼자라도 마시지? 자기 전에 한두 잔은 건강에도 좋다는데 .."
"내가 알코올 중독자냐? 혼자 무슨 맛으로 와인을 마셔? 와인은 분위기에 따라 맛도 달라지는데."



최수희는 식당에 가는 것도, 와인 마시는 것도, 혼자서는 관심이 없단다. 이 말을 들으니까 내 마음이 무거워진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식당을 나섰다. 간간이 찬 바람이 불어온다. 그녀는 파커에 붙어있는 후드를 당겨서 머리에 쓴다.

우리는 아까 내려왔던 그 길을 다시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최수희가 내 손을 잡고 그녀의 파커 주머니로 넣는다. 그녀가 차를 가져올 것을 괜히 걸어왔다고 투덜거린다. 나는 밥 먹고 나서 걷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렇게 천천히 걸으면 30분 정도 걸리잖아? 밥 먹고 이 정도 걷는 것은 소화에도 좋아. 괜찮아."
"맞아. 지금 배가 엄청 부른데, 이렇게 자기랑 걸어가는 것도 좋네. 하하."

"배가 부르다고? 도대체 얼마나 먹었는데?"
"자기랑 같이 먹으니까 엄청 땡기는걸 어떡해?"

"저러언. .. 날이 춥지만 않으면 완전 딱인데."
"봄, 여름, 가을 동안 안 춥다가, 겨울이니까 추운건데, 뭐가 어때서 그래? 자기, 추위 싫어해?"

"아니야. 나는 괜찮아. 누나한테 추울까봐 그러지. 이렇게 추운 날 미니스커트라니 .."
"자기야. 나는 미녀야. 겨울에는 얼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단 말이야. 하하."




[3]
나는 집에 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녀의 파커 주머니 안아서 내 손을 꼭 잡은 채로 놓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또 나도 간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자신이 없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나는 24층을 눌렀다. 올라가는 동안에 나는 그녀의 허리로 팔을 둘렀고, 그녀는 내게 몸을 기댄다.

엘리베이터가 멎고, 문이 열렸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나서서 그녀의 아파트 문 앞에 섰다. 그녀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두 손을 빼지 않는다. 이 문의 비밀 번호는 바로 내 생일인 "1127"이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우리 둘이 사귄다고 그녀가 그렇게 설정했었다. 이것은 내가 최수희를 위로한다는 어설픈 생각에서 내가 그녀와 사귄다는 말을 한 결과이다. 그녀는 매일 이 번호를 입력하면서 나를 생각할까? 나와 최수희가 같이 보낸 시간들은 그녀의 기억 속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내가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비밀 번호도 아직 그대로이고, 이사도 안 가고 이 큰 집에서 아직도 그냥 혼자 살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또 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우리가 그녀의 집 안에 들어서자 그녀가 내게 안긴다. 나도 그녀를 안았지만, 파커가 너무 두꺼워서 그녀의 몸을 안았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나는 양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그녀의 두 다리가 내 허벅지 하나를 꼬욱 감싸고, 그녀의 그 곳은 내 허벅지를 꼬옥 누른다.



"하아아. .. 자기. .. 너무 보고 싶었어."
"겨우 일주일 정도 못봤는데, 왜 이래?"

"일주일이면 7일이야. 그게 어떻게 겨우야? 자기가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회사에서나마 일주일에 최소한 두세 번은 만났는데, 그 일주일 동안은 아예 보이지를 않았단 말이야. 내가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모르지?"

"내가 왜 모르겠어? 지금은 이렇게 누나 집에 같이 왔잖아요."
"그래. 지금까지는 내가 눈을 감아야만 자기가 떠오르고, 눈을 뜨기만 하면 사라지던데, 오늘은 눈 떠도 그대로 있고, 지금은 이렇게 나를 안고 있네. 너무 좋아."




최수희는 내 뺨을 쓰다듬으면서 좋다고 말하지만, 그녀가 하는 이 말을 듣는 나는 왜 가슴이 먹먹할까? 나는 내 뺨을 최수희의 뺨으로 갖다 댄다. 아직은 그녀의 뺨이 싸늘하다. 그런데 그녀의 집안은 제법 따뜻하다.



"보일러를 켜두었네?"
"당연하지. 낮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껐다가, 저녁 7시부터 들어오게 해놨거든. 지금 벌써 10시가 다 됐잖아요."

"누나 다리랑 엉덩이가 꽁꽁 얼었겠다. 여기 서서 이러지 말고 어서 들어가자."
"스타킹 신었는데, 한 30분 걸었다고 웬 엄살이래?"

"엄살이 아니고 걱정이거든요. 이 추위에 밖에서 그 만큼 걸었잖아. 여자는 하체를 따듯하게 해야 한다는데. 그 얇은 스타킹 하나로 되겠어?"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까, 추위에 사랑이 완전히 식었군. 하하."

"뭐라고?"
"아니야. 됐어."



그녀가 파커를 벗어서 핸드백과 함게 거실 바닥으로 던진다. 그리고 내 외투의 단추를 모두 열고 그 안으로 파고 들어온다. 그제서야 그녀의 몸이 느껴진다. 젖가슴과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이 볼륨 그리고 탄력.

나는 그녀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고 안았다. 지난 번에 둘이 출장 갈 때 안고 나서 안았으니까, 벌써 한달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녀의 두 팔이 내 어깨로 걸리고, 나는 갸름하고 오목조목한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최수희의 두 눈이 감기고, 우리의 입술이 너무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우리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서로의 입술을 빨면서 키스했다. 내 입술이 그녀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녀의 입술은 내 입 안으로 빨려 들어온다. 우리 둘의 혀는 그녀의 입 안에서 또 내 입 안에서 서로 엉킨다. 우리는 마치 오랜 세월을 그렇게 해온 것처럼, 농도 짙은 키스를 익숙하게 해냈다. 한참만에 나는 입을 들어냈다.



"누나. 이제 그만 하고 들어가."
"......"



그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내게는 아쉬움만 남는다.




[3]
우리는 거실에 있는 소파로 갔다. 내가 외투를 벗자, 그녀가 받아서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TV를 켜고,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최수희가 헐렁한 원피스에 짙은 회색 니트를 걸치고 나와서 내 옆으로 앉는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그녀도 내 어깨를 안는다. 나는 한 손을 뻗어서 그녀의 종아리와 무릎 그리고 허벅지와 엉덩이까지 손으로 쓰다듬었다. 아직도 내 손에 서늘함이 느껴진다. 그녀는 내 어깨로 이마를 얹고 내게 소근거린다.



"자기야. 이제 우리 와인 마셔요. 응?"
"그래요."

"그럼 뽀뽀부터."



그녀가 두 눈을 감고 턱을 치켜든다. 그녀의 빨간 입술이 닫혀있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갠다. 그녀의 몸이 움찔 하고, 가느다란 숨결이 조용히 떨린다. 나는 그녀의 말랑거리는 입술을 조심스럽게 빨아 당겼다. 닫혀있던 그녀의 입술이 열린다. 그 틈으로 혀 끝을 넣고 그녀의 입술을 핥는다. 그녀의 촉촉한 입술도 내 입술을 천천히 부드럽게 빨기 시작한다. 나에게 현기증이 나면서 내 몸 전체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하음. .. 아음 .. 하아아아. .."



나는 그녀의 입 안으로 혀를 밀어 넣으면서, 한 손으로는 그녀의 젖가슴을 원피스 위에서 움켜쥔다. 그녀의 몸이 움찔한다. 그녀의 입술이 내 혀를 물고 빨아당기면서, 그녀의 몸이 꼬인다. 그녀의 손은 내 손등을 자기 젖가슴으로 꼬옥 누른다.



"으윽. .. 흐윽. .. 그만해. .. 와인. .. 하아아아. .."



그녀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내 목과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당기며 매달리듯이 하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내 입술과 혀를 힘껏 빨았다. 나는 소파의 등받이로 등을 기대고 안고, 그녀는 내 무릎으로 올라와서 앉는다. 내 입술은 그녀의 입술에서 목으로 미끄러진다.




"하음. .. 자기야. 사랑해. .. 아음 .. 와인 .. 아음. .."



그녀가 몸을 약간 일으키며 내 머리를 젖가슴으로 끌어당긴다. 그녀에게서 뭉클함이 내 얼굴을 뒤덮는다. 내 손은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끌어당긴다. 비록 원피스 위에서이지만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강한 향기로 내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그녀의 거친 숨결이 내 머리와 귀로 쏟아진다.




[4]
우리는 한참만에 서로의 몸에서 떨어졌다. 그녀가 주방에서 안주를 만들고, 나는 와인과 함께 소파로 날라왔다. 그녀는 색깔이 있는 두꺼운 양초를 가져와서 촛불도 켰다. 거실의 불은 아예 꺼버렸다.



우리는 잔에 와인을 따라서 마셨다.



"마시고 있어. 화장 지우고 올게."
"별로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무슨 화장을 지운다고.."

"여자가 화장 지운다고 하면, 그냥 그런 줄로 알아."



그녀가 일어서서 조용히 욕실로 갔다.





[5]
그 때 내 전화기로 카톡이 들어온다. 윤기숙이다.



"지혜 말로는 오빠 오늘 학교에서 모임이 있다며? 왜 나는 모르고 있지? 몇 시에 어디서 누구랑 만나는데?"



낮에 아이린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벌써 윤기숙의 귀에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뭐라고 말을 할까 궁리하다가 예비군들의 복학생 문제를 생각해냈다. 우리 개구리들끼리 만날 때에는 여학생들은 좀처럼 끼지 않는다. 나는 재빨리 윤기숙에게 답장을 보냈다.



"너랑은 상관없어. 군에서 제대한 복학생이 있어서 예비군들의 환영회야."
"또 여자 나오는 술집에 가서 술마셔?"

"아니거든요. 저녁 먹고, 소박하게 이태원에서 칵테일이나 마신다고."



조금 있으니까 또 카톡이 온다. 이번에는 지혜다.



"별로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아까 그 일반화학 읽으면서 오빠 올 때까지 안 자고 기다릴게."

"아싸아. 우리 지혜 공부하는구나. 열공하세요."
"책을 보겠다고 했지, 공부한다고는 안 했거든요."




지혜의 말풍선에 있는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철렁한다. 내가 왜 구차하게 지혜에게까지 거짓말을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해도, 이러는 내가 너무 한심스럽다.

그렇다고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는 최수희를 혼자 남겨두고, 지금이라도 당장 일어나서 툭툭 털고 나갈 담력이 나에게 있나?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만일 그렇게 마음이 강했더라면, 나는 지금 주식회사 한강 유통의 회장 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 이유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환경이 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라는 인간은 사회 생활을 한다는 핑계로 너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하는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아무리 타협이 필요하고는 하지만, 서로 상극인 물과 불이 어떻게 타협할 수 있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참과 거짓도 서로 타협을 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은 뻔한 사실이 아닌가? 이

이러다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겠다. 만일 어느 한 가지가 잘못되면, 연쇄적으로 순식간에 폭발해서 벌집처럼 되는 것은 아닐지 진심으로 걱정된다.


갑자기 최수희가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부른다.



"자기야, 무슨 일이야? 엄청 심각해?"




어느새 그녀가 윤기로 반짝이는 얼굴로 내 옆에 서있다. 샤워를 했는지, 향기가 요란하다. 머리도 아직 촉촉하다.



"심각? 심각하기는 하지. 그런데 누나랑은 상관없어."
"그럼 지금 바로 가야 해? 우리 와인 고만 마실래?"

"아니야. 괜찮아. 시간이 그렇게 없는 것은 아니야."
"머리만 말리고 금방 올게."



그녀는 방으로 들어간다. 방 안에서는 헤어드라이어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6]
한참 후에 그녀가 다시 나와서 내 옆으로 앉았다. 니트는 벗고 원피스만 입고 있다. 앞가슴에 있는 단추 세 개가 열려있다. 우리는 와인을 마셨다. 그녀가 사과조각을 내 입에 넣어준다. 그녀가 몸을 굽힐 때 앞자락이 벌어지고 그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나는 그녀의 허벅지를 간신히 덮고 있는 원피스의 아랫자락을 위로 들췄다. 그녀의 허벅지가 끝나는 곳에 있는 얼마 되지 않는 그녀의 음모가 보인다. 그녀의 팬티가 없다. 그녀가 몸을 굽히면서 내 손을 잡고 손깍지를 꼈다.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나 올라간 원피스는 내리지 않고 그대로 둔다.



"자기야, 아무래도 거실이 춥지? 들어가자."



우리는 그녀의 침대로 갔다. 우리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다시 키스한다. 우리의 숨결이 거칠어지고, 그녀는 내 무릎으로 올라온다. 나는 그녀의 등과 허리를 잡고 그녀의 몸을 안았다. 내 두 다리는 그녀의 다리 사이로 들어갔고, 그녀의 엉덩이가 내 허벅지를 누른다. 그녀의 원피스 아랫자락이 다시 허리까지 젖혀 올라가고, 내 두 손은 그녀의 엉덩이를 주무른다. 그녀는 내 입술과 혀를 빨아 당긴다.


나는 그녀의 원피스 앞자락을 아래로 당겨서 내리고, 그녀의 커다란 젖무덤 하나를 꺼냈다. 그녀는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한 손으로 받쳐올린다. 나는 혀 끝으로 그녀의 조그만 젖꼭지를 건드렸다. 그녀가 몸을 움찔한다. 그녀의 젖꼭지와 유륜을 입에 물고 빨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젖가슴을 내게 밀어붙인다.




"하악. .. 자기 사랑해. .. 하아아아. .."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또 한다. 우리 둘의 몸에 불이 붙으면 꼭 하는 말인가? 아까 같이 있을 때 하는 것을 보면 진심이 가득 담긴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얼마 안 있으면 그녀와 나는 헤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을 나나 최수희는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이 헤어짐이 두렵다. 그래서 나는 함부로 사랑을 시작하지 못한다.



그녀가 일어서서 내 옷을 벗긴다. 그녀는 옷이라고는 입고 있던 원피스 하나인데, 나는 으 원피스를 훌렁 벗겨버렸다. 우리는 알몸으로 침대에 쓰러졌다.

우리가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서로를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최수희는 알고 있을까? 우리가 벗은 몸으로 침대에서 뒹굴 수는 있지만, 또 사랑과 열정으로 서로의 몸을 탐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머무를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세월 속에서 와서, 스쳐 지나가다가 우연히 만났고, 이제 언젠가 대가 되면 다시 세월 속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최수희도 이것을 알고 있을까? 그런데도 그녀는 나를 사랑할 수 있고, 또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최수희는 나보다 훨씬 강한 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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