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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3 01:16 893회 0건






164. 드디어 수능



[1]
조해수와 조해수의 엄마 윤미진이 들어온다. 윤미진은 춥다면서 커피를 따라서 해수와 같이 마신다. 조해수는 검정색 파커를 입고 있다. 추위에 대비해서 준비를 하고 왔다.



"오빠. 안녕."
"해수도 좋은 아침."

"아직은 살떨리는 아침이거든요. 하하."
"해수야. 제발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

"안 하려고 해도 저절로 .."



잠시 후에는 지혜와 아이린도 들어온다. 지혜는 교복 위에 빨간 외투를 입고 있다. 작년 겨울에 캐나다에 갈 때 엄마가 사준 외투이다. 아이린도 지혜와 같이 마시려고 커피 두 잔을 들고 식탁으로 왔다. 다들 엄청 엄숙한 분위기이다. 윤미진과 아이린은 지혜와 해수를 위한 도시락을 들고 왔다. 우리는 모두 소파로 내려앉았다.



"와아. 오빠 좋은 아침. 해수도 벌써 왔네."
"어서 와."

"지혜 너는 살 안 떨려?"
"떨고 싶어도 이 몸께서는 살이 없다. 하하."

"아오오. 진짜 얄미워."
"마음을 착하게 써라. 안 그러면 오늘 정의의 심판을 받거든요."




지혜와 해수가 주고받는 말이 약간 날이 선 것 같다. 둘 다 긴장하고 있는 것 같다. 윤기숙이 교통정리를 하러 나섰다.



"이제 고만들 해. 잠은 잘 잤겠지?"

"어. 간만에 푹 잔 것 같아. 언니는?"
"쟤가 왜 저래? 나는 두시 넘는 것 보고 잠들었는데."

"바보야. 그럴 때는 수면제를 먹으면 되지."
"나도 그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오늘 잘못 될까봐 걱정돼서 .."

"수면제가 아니라 잠을 제대로 못 잔 것 때문에 잘못되기도 할 것 같은데?"
"뭐야? 그럼 나 오늘 완전 망한 거니?"

"망하긴 뭘 망해? 아직 시험지는 구경도 안 했구만."



그 때 경식이가 들어왔다. 해수가 경식이에게 손을 흔든다.



"와아앙. 꽃식이다. 누나 수능 보러 간다고 응원하러 왔지?"
"어. 당연히 그래야지. 누나들 으라차차차. 알았지?"




해수가 경식이를 자기 옆자리로 불러서 앉힌다. 지혜의 눈길이 또 번뜩인다.



"도대체 저건 경식이만 보면 왜 저러는 거지?"




해수는 지혜의 말에 들은 척도 안 한다. 나는 맞은 편에 앉은 해수와 지혜를 보며 말했다.



"따끈한 커피 한 잔씩 마셨으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아무리 못해도 공부한 것만큼은 확실하게 해치우는 거다. 알았지?"

"예."

"그럼 이제 나가자."
"하아. .. 오늘 하루만 죽자."
"죽든 살든 이제 하루면 끝이다."



우리는 모두 일어서서 계단으로 내려갔다.





[2]
나는 지혜와 해수를 데리고 윤미진의 차에 탔다. 아이린은 경식이를 차에 태운다. 윤미진의 차가 출발하자, 아이린도 우리 뒤로 따라 붙는다. 윤기숙은 혼자 내 차를 타고 온다.

수능 시험장까지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로 들어가는 길 입구는 완전 난리이다. 우리도 멀찌감치 차를 세우고 내가 해수와 지혜를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 윤기숙도 내려서 애들과 악수를 한다. 싸늘한 겨울 바람이 몸을 감싼다. 아이린과 윤미진도 차에서 내려서 두 딸들을 한꺼번에 안고 뺨에 뽀뽀를 한다.



"마음 푹 놓고 시험 잘 쳐. 알았지?"
"예."
"끝나면 바로 회 먹는다. 하하."



지혜와 해수가 나에게 오더니, 좌우에서 내 두 팔에 팔짱을 단단히 낀다. 등에는 도시락이 들어있는 가방을 하나씩 멨다. 나는 두 애들을 데리고 시험장 입구로 들어가는 길로 갔다. 교문이 보이자 두 애들이 걸음을 멈추고 교문을 노려본다. 나는 앨 손으로 애들의 팔을 하나씩 잡고 걸었다. 저 앞에서 지혜와 해수의 후배들이 주욱 늘어서서 손뼉을 치며 환호를 한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어떤 남자가 와서 지혜와 해수의 손에 따뜻한 음료수가 들어있는 종이컵 하나씩을 건네준다. 예들은 내 팔짱을 풀고 종이컵을 받는다.



"서지혜. 조해수. 오늘 대박 터트리자. 알았지?"
"예. 감사합니다."



지혜 말로는 선생님이란다. 이 말을 한다고 날씨는 추운데 지혜의 분홍색 입술이 오물거린다.



"제일 악랄한 수학샘."
"그러게. 저 인간 오늘 아침에 웬 일이지?"

"그 동안 지은 죄가 워낙 많거든 하하."
"나이가 제일 어리니까 총대를 멨나?"

"저 나이에 아직 결혼도 안 했대잖아?"
"안했냐? 못했겠지. 어떤 여자가 저런 쫌생이한데 시집을 가냐?"




뒤에서는 애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몰랐니? 지혜언니 남친이래."
"과외샘이라던데? 과외하다가 사귄대."
"저 정도는 돼야 같이 공부할 맛이 나지."

"와아. 진짜 엄청 잘 생겼다. 당장 연락해서 내가 물려받아야지."
"글쎄? 저 오빠는 지혜언니만큼 안 예쁘면 학생으로 받지를 않는대."
"너는 아마 답이 없을 것 같은데 .."

"이게 새벽부터 왜 이래? 내가 뭐 어때서?"
"그거야 네 생각이고."
"야. 저기 또 다른 언니 올라온다."



우리는 교문 앞까지 같이 걸어서 올라간다. 지혜와 해수가 나를 보고 웃는다.




"오빠. 혈기 왕성한 저 팬들 관리 좀 해야겠다."
"맞다. 내려갈 때 팬 사인회라도 해야겠는데?"
"그러게. 너는 도대체 학교에서 무슨 말을 퍼트린 거야?"

"내가 입이나 벙긋했나? 해수 저게 그랬지."
"하이고오. 그러셔? 그래서 작년에 애들 앞에서 키스까지 하고 난리를 부렸어? 나도 그 날 오빠 처음 봤거든요?"

"그거야. .. 남친 없다고 서지혜를 완전 개무시하니까."




교문 옆 담벼락에는 벌써 누군가가 붙여둔 엿덩어리가 있다. 이 추위에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다. 지혜와 해수가 킥킥대고 웃는다.

나는 정문 몇 발작 앞에서 얘들의 팔짱을 풀게 하고 두 손을 꼬옥 잡았다.



"지혜, 해수 화이팅!"
"뭐야아."



지혜는 재빨리 두 팔을 내 겨드랑이로 넣고 내 어깨를 힘껏 당기며 쓰러지듯 내 품에 안긴다. 내 뺨에 차디찬 지혜의 입술이 와서 도장을 찍는다.




"헤헤. 이 정도는 돼야지."
"그럼 나도."

"야!"
"쏘리. 오늘 딱 하루만."



지혜가 말릴 새도 없이 해수도 똑같이 한다. 그런데 해수는 아예 내 입술을 빨아버린다. 지나가던 다른 학생들이 우리를 힐끗거린다. 지혜와 해수는 내게 휴대전화기를 건네주었다.


해수와 지혜는 몇 걸음 가다가 뒤돌아보고 손을 흔들면서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건물 입구로 가면서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고 손을 흔든다. 입구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서 또 한참을 서서 나에게 손을 흔든다.

해수가 먼저, 그리고 잠시 후에는 지혜가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다른 수험생들이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한참을 서 있었다. 찬 바람에 발이 꽁꽁 어는 기분이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하루의 시작이겠지. 너희는 누구나 가는 길을 가는 것이다. 길은 가다가 다른 길들과 합해지기도 하고, 또 다른 길들로 갈라져서 나누어지기도 한다. 어느 길이 나에게 정해져 있기도 하겠지만, 이 길은 우리가 선택의 방황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선택해서 가는 것이다. 행운의 여신이 오늘 만큼은 너희를 꼭 안고 놓아주지 않기를 ...

흐르는 물이 거꾸로 흐르지 않듯이, 불던 바람이 되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오늘 이 시간도 꾸준히 앞으로만 흐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저런 사건들과 함께 우리 기억 속으로 묻혀 들어갈 것이다. 저녁때에는 지혜와 해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 교문을 나설 것이다.




[3]
나는 돌아서서 내가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한참 내려오는데 어떤 여학생이 뒤에서 나를 부른다.



"저기요. 잠시만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섰다. 지혜네 학교 학생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죄송한데요. 혹시 지혜언니 과외샘 아니세요?"
"맞아요."

"저는 권은주인데요. 학교에서 지혜언니랑 엄청 친하거든요. 언니 과외 끝나면 그 자리로 제가 들어가고 싶은데, 안될까요?"

"어떡하죠? 나는 이제 과외를 더 이상 안 할건데?"

"예에? 왜요? 왜 안 하시는데요? 분명 지혜언니가 자기 곧 끝난다고 잘 부탁해보라고 했는데 .. 모르시나요?"

"글쎄요. 지혜가 왜 그런 소리를 했을까?"
"음. .. 그래도 전화번호라도 저한테 주시면 안돼요?"



나는 권현주에게 내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그녀는 내 전화기에 자기 번호를 찍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자기 전화기를 꺼내서 내 번호를 확인하더니 내게 전화기를 되돌려준다.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자기 학교 애들이 모여있는 곳을 쳐다보더니, 나를 따라서 걷는다.

도로 앞에서 권현주가 나에게 인사를 한다.



"나중에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추운데. 수고해요."



그녀는 다시 자기가 있던 곳으로 뛰어간다. 나는 우리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윤미진은 경식이를 태우고 돌아가고 없다. 윤기숙도 내 차를 타고 가버렸다. 아이린 혼자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차에 타고, 지혜와 해수의 휴대전화기를 아이린에게 건네주었다.



"경찰들이 차 빼라고 난리야. 다들 갔어. 기숙씨는 학교 간다고 갔고, 미진이는 경식이 데려다 주고 자기 집에 간다고 갔어. 자기도 학교로 가야죠?"

"그러니까 그냥 집에서 인사하면 되지 뭐 한다고 이 추위에 여기까지 와?"
"미진이야 엄마니까 당연히 왔고, 기숙씨는 학교 가는 길에 들른 것 같은데?"



아이린은 나를 우리 도서관 앞에 내려주고 회사로 간다며, 나에게 손을 흔들고 가버렸다. 나는 도서관으로 들어가서 열람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바로 윤기숙이 와서 나를 데리고 매점으로 갔다. 매점은 막 문을 열고 준비하는데, 윤기숙이 가더니 아메리카노가 든 종이컵 두 개를 들고 온다.



"춥지? 이거 마셔."
"고마워."

"오빠 마음이 엄청 착잡하시겠어?"
"그렇기는 해. 이번 시험 족보는 구했니?"

"왜? 오늘 같은 날 공부하게?"
"너도 참. .. 내가 수능 보냐?"

"오빠는 진짜 외계인 맞나봐. 하하."
"그래. 나 안드로메다에서 왔다. 하하."

"이 남자 진짜 잘났어. 오늘 수업은 10시에 하나, 오후 2시에 하나야. 알지?"





[4]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나는 윤기숙과 함께 강의실을 나와서 주차장으로 갔다



"나는 도서관에 있어야 하는데?"
"저녁에 회 먹으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그럼 시험 공부는 어쩌게?"
"이번 주말까지는 쉬고, 다음 주에 하자."



우리는 차에 타고 집으로 출발했다.



"오빠야 쉬는 것이 당연하지만, 내가 뭘 한게 있다고 .."
"기숙이가 표시 안 나게 나나 애들을 많이 도와줬잖아."

"나야 그냥 심심할 때 .. 한수정 언니가 시킨 것도 있고 .."
"수정이가? 너한테 뭘 시켰는데?"

"그런게 있어. 여자들 일이니까, 오빠는 알려고 하지마."
"여자들끼리 무슨 비밀들이 그렇게 많은지 .."

"그럴만한 소스는 오빠가 만들거든요."
"알았다. 알았어. 결국은 내가 죽일 놈이네."

"뭐야아. 그걸 이제 알았다고? 하하."





[5]
우리는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윤기숙은 자기 텔로 올라가고, 나도 내 텔로 들어왔다. 아침 일찍부터 설치고 다녀서인지 너무 피곤하다. 나는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에 침대에 누웠다. 몸은 피곤하지만, 잠이 쉽게 들지는 않는다.

나는 휴대전화기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수능 뉴스를 들여다보았다. 1교시 언어영역은 예상보다 쉬웠다. 2교시 수리는 가형이 어렵고, 나형은 쉽다. 등등. 벌써 정답이 공개되고 있다.

기자는 "쉽다", 또는 "어렵다" 라는 말을 마음대로 사용하여 기사를 쓰고 있다. 그런데 이 가지는 무엇을 근거로 이런 말을 사용할까? 자기가 그 문제를 직접 풀었다는 말인가? "쉽다", 또는 "어렵다" 라는 말은 수험생 개개인의 느낌을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아무리 평이한 문제가 많아도 어려운 애들에게는 어렵고, 쉬운 애들에게는 쉬운 것이 아닌가? 혹시 난이도가 높은 문제가 많고 적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똑같은 문제도 저렇게 "쉽다", 또는 "어렵다" 라는 말을 사용하면 수험생들은 어쩌란 말인가? 쉽게 나왔다는 수학에서 지혜가 혹시라도 점수를 많이 잃는다면, 지혜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쉽다는 문제도 제대로 풀지 못했다면서 얼마나 스스로를 자책할까?

기사를 쓰는 기자라는 사람이 아무리 언어를 간단하게 사용한다 하여도, 그런 언어를 사용했을 때, 누구에게 어떤 파장이 일어날 지는 왜 생각하지 않을까? 아니면 대통령의 부탁이라는 것 때문에, 혹시 언론과 교육부가 짜고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기사를 읽으면서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또 지난 밤에 아이린과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아이린이 걱정이 된다. 지혜의 과외가 끝난다는 사실 때문에 아이린이 불안해 하고 있는 것 같다. 지혜의 수능이 지혜에게는 한 단계의 성숙을 의미하겠지만, 아이린에게는 이제부터는 나와의 사이가 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언젠가 때가 되면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우리가 시작할 때에는 서로를 소유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었다. 우리에게 만남이 있었으면, 우리는 헤어짐을 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날이 가면서 나와 아이린에게 이성이라는 것이 작동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만일 우리가 조금만 생각한다면 우리가 도착할 종착지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생각하기를 거부하면서,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기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만나서 지금까지 무엇을 했나? 사랑이었나? 아니면 그냥 불장난을 하면서 엔조이였을까? 일상은 그만큼 지루한 것이고, 끊임없이 일탈이라는 유혹을 받는다. 그렇다면 아이린은 자기 딸을 위하여 뭔가를 한다는 생각을 하다가, 자신의 일상에서 일탈을 한 것이었을까? 이제 그녀가 자기의 원래 생활로 돌아가려니까, 그것이 싫은 것일까? 그렇다면 지난 밤에 아이린의 끈적거리던 몸짓과 뜨거웠던 신음은 이러한 일들에 대한 거부와 자신의 애욕 때문이었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엎치락뒤치락을 계속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6]
한참을 자고 있는데 거실 쪽이 너무 시끄럽다. 나는 침실 문을 열고 거실로 갔다. 식탁에 지혜와 해수가, 또 소파에는 윤미진과 아이린이 앉아 있다.



"와앙. 오빠 나왔다."
"수고했다. 나 금방 씻고 올게."



나는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은 후에 식탁으로 갔다. 얘들은 수험표 뒷면에 빽빽하게 자기가 쓴 답을 적어와서 신문이 발표한 정답과 비교를 하고 있다.



"어땠어?"
"하아. .. 오빠 진짜 얄밉거든요."

"왜?"
"우리 시험치는 동안에 잠이나 쿨쿨 자고 있냐?"

"그게 아니고, 우리는 쉬는 날이 아니잖아. 나 학교에서 수업 다 받고 와서 잠시 잤는데? "
"어? 그랬어? 그럼 하루 종일 잠만 잔 것이 아니었나?"

"그럴리가? 의리가 있지 .. 어떻게 됐는가나 얘기해봐."
"궁금해?"

"그걸 말이라고 해?"
"맨 입으로?"

"어? 회 먹으러 가잖아?"
"그건 아빠가 쏘는 거고. .. 오빠는?"

"이번 주말에 놀러 간다. 오케이?"
"헤헤. 그 정도는 돼야지."

"그러니까 ..."
"대박오빠야. 나랑 해수랑 이번에 완전 대박이야."

"뭐가 어떻게 됐는데?"
"이번에 모의고사보다 엄청 쉬웠거든. 진짜 .. 마킹 실수가 없으면 .."



나는 지혜와 해수가 체크한 수험표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니까 .. 지혜랑 해수랑 기분 좋다 이거지?"
"좋기만 해? 서지혜 오늘 미치고 까무러쳐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니까."
"맞아. 문제를 읽으면서 답이 빤히 보이니까, 가슴이 두근거려서 숨이 막혔다니까."

"그래. 이 정도면 둘 다 진짜 엄청 잘했네. 앞으로 결과 나오는 것을 기다려보자."



조해수의 아빠가 조해수의 전화기로 전화를 했다. 그가 우리에게로 출발한다는 것이다. 또 서전무에게서도 지혜의 전화기로 전화가 왔다. 그들이 출발한다면서, 우리에게도 횟집으로 내려오라고 했다고 한다. 지혜가 윤기숙에게도 전화를 했다. 아이린은 경식이를 전화로 불러 내렸다.

잠시 후에 윤기숙이 경식이와 함께 내려와서 우리는 모두 오피스텔을 나섰다. 밖은 이미 어둡다. 찬바람도 여전하다. 맨 앞에 아이린과 윤미진이 걷는다. 바로 내 앞에서는 조해수가 경식이의 팔짱을 끼고 걷는다. 지혜는 내 팔짱을 끼고 그들 뒤를 따랐다. 그런데 지혜가 조해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지혜가 내게 물었다.



"오빠. 아까 혹시 권은주 만났어?"
"어. 너네 들어가고 내가 내려오는데 나를 부르던데? 너 왜 이상한 소리 하고 다녔어?"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걔도 나보다 더 한심하고 딱한 애야. 내가 걔를 보면서 마음 고쳐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

"그래도 나랑 아무 말도 없이 그런 말 함부로 하지마."
"오빠. 서지혜를 사람 만든 것은 김태현이잖아? 권은주 인간 만들 사람은 이 세계에 오빠 단 한명 밖에 없어."

"애가 정말? 나, 내년에 캐나다로 갈 지도 모르거든요?"
"뻥치시네. 경식이 대학보내기로 누가 약속했더라?"

"돌겠다."
"누가?"

"내가."
"오빠가 왜 도는데?

"왜는 왜야? 너 때문이지."
"오빠. 그럼 .. 언니보고 하라고 하면 안될까? 권은주가 언니도 참 마음에 들어 할텐데."

"몰라. 나는 이번 일에서 완전히 손 뗐다."





우리는 횟집 안으로 들어갔다. 서전무와 조해수 아빠는 아직 도착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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