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호는 연희를 매일 보러 갔다.
준호와 연희의 나날은 아무 장애도 없이 질서 있게 현재에 머물렀지만,
미래는 마찬가지로 평화스럽게 현재를 바라볼 수 없었다.
11월에 의사실기 시험을 앞두고 있었지만 준호는 준비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 점 때문에 준호는 선배 정수와 몇 번의 마찰을 빚었다.
준호는 연희라는 존재를 위험요소로 생각하는 정수에게 불쾌함을 느꼈다.
준호의 삶은 온통 연희라는 존재로 가득 차 있었다.
준호는 자기의 안정된 집과 아들과 착한 아내를 생각해 보았다.
(나의 나날은 얼마나 불행하게 매일 매일이 똑같이 흘러갔던가)
준호는 닥치는 대로 아내를 속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신 온갖 종류의 친절과 봉사를 베푸는 것으로 그것을 보상하고 있었다.
연희는 준호를 사랑했지만 지금도 자기와 준호의 행동을 찬성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행복에 대한 불만감은 잠시도 연희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 순간 손 안에 쥐고 좀 기뻐했는가 하면
곧 해체되어 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수백 개의 불안들이 연희를 괴롭히는 까닭에!
연희가 누리는 행복은 그만큼 의문스러운 것이었다.
(나를 이 광기에서부터 고쳐줄 약이 있을까?
나는 왜 준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 나는 준호에게 있어서
오직 나란 여자 말고는 발견될 일이 없으리라 여겨왔던 하나의 특성,
패배에 돌아서지 않는, 원하는 것에 대한 무모한 열정에 매료된 것 같다)
많은 종류의 남자들로부터 연희가 지금까지 냉담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열렬한 구애가 연희의 가치관 안에서 비웃음을 살 만큼
너무도 흔한 패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젠틀하고 세련되고 똑똑하고 앞날에 대해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결정적인 하나가 결핍되어 있었다.
그들은 순수하지 못했다.
그들은 연희 앞에 기사도처럼 굴었으며 영웅이 되길 바랬다.
그들은 자기의 약함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얼마간 허세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준호라는 인간은 연희를 사랑하는 것 외에는
보여줄 것이 도무지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준호는 억지스러웠고 자기 외의 남자들에 대해 심하게 질투했으며
그런 자기를 제대로 변호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연희는 이 사람의 이기심은
어른다운 계산이 철저히 배제된 어린아이나 가질 수 있는 철없는 열정의 산물이라 느끼며
매혹되었다.
준호는 자기의 나약함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준호는 허세가 없는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는 것.
이것이야 말로 준호라는 남자가 가진 가장 큰 힘이었다.
준호는 연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준호는 연희의 책장에 꼽혀 있는 많은 종류의 책들을 보며
연희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어두움은 문학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연희씨의 독서 스펙트럼은 참 넓군요.
준호가 연희의 책장에서 하나의 책을 꺼내 들며 말했다.
-그건 아마 내 직업때문일거에요. 사실은 고전을 제일 좋아해요. 와인 오픈할까요?
방금 설거지를 마친 연희가 말했다.
-이리 주세요. 내가 할게요. 고전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책이나 작가는요?
준호가 꺼낸 책을 식탁위에 올려놓고 앉으며 말했다.
-까뮈를 좋아해요. 그 중에서도 페스트. 읽었나요?
-아니요. 나는 소설을 많이 읽진 않았어요. 하지만 삼국지는 열 번 정도 읽었죠.
-정비석?
-아니요. 이문열. 아버지에게서 선물 받았죠.
-음.. 사람의 아들은 훌륭한 소설이죠.
하지만 이문열은 대한의 모든 딸들아 이후 좋아하지 않아요.
그렇게도 계급주의 사회에 편승하길 잘 하는 사람의 머리에서
구로아리랑이나 우리의 일그러진 영웅들 같은 수작이 나왔다는 것이 의하하죠.
지금의 그는 타작소설가에 지나지 않아요.
하지만 이문열의 삼국지는 읽어보고 싶네요.
-나는 페스트를 읽어봐야겠어요. 연희씨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이니까.
-그 소설 꽤 난해할거에요.
연희가 걱정스러움이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희씨 만큼은 아닐거에요.
-그럼 좋아요. 나는 이문열의 삼국지를, 준호씨는 페스트를 읽고 우리 토론하는 거 어때요?
-내가 말로서 연희씨를 당해낼 수 있겠어요? 하지만 좋아요.
준호가 활짝 웃으며 오픈한 와인을 잔에 따라 연희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라쇼몽이네요.
연희가 준호가 책장에서 꺼낸 책으로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읽어줄래요?
준호가 기대와 호기심에 찬 얼굴로 연희에게 바짝 다가앉으며 말했다.
-좋아요!
연희가 기쁜 마음이 되어 즉각 대답했다.
그때에 연희의 핸드폰이 울었다. 친구 지훈이었다.
-여보세요.
-여전사, 안녕하신가. 한동안 연락이 없으니 궁금해서 말이야.
-으응.. 그동안 좀 바빴어. 곧 입시잖아.
연희가 준호의 눈치를 조금 살피며 소곤대는 목소리로 둘러대듯 말했다.
-나도 그동안 눈코 뜰 새가 없었어. 그래도 우정은 지속되는 거겠지?
수화기를 통해 지훈의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인생에 있어 그처럼 모범적인 좌표를 가지고 계신 스승과의 우정을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
-네 목소리에서 밝음이 느껴져서 안심이 된다. 며칠 내로 얼굴 보러 갈게.
-응? 언제 올건데?
-글쎄.. 곧. 또 연락할게.
-그래. 잘 지내렴.
준호의 얼굴은 우울한 불만으로 굳어있었다.
-누구에요?
-친구요.
-친해 보이던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에요. 아니 좋아한다기 보다는 존경해요. 멋진 사람이죠.
준호의 눈빛이 타올랐다.
그 눈빛은 적극적인 질투심을 말하고 있었다.
-그 사람도 연희씨를 친구로 생각할까요?
-무슨 뜻이에요?
연희는 약간 못마땅한 얼굴이 되어 반문하며 덧붙였다.
-지훈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친구에요. 가족과 같은.
나이는 같지만 나에겐 오빠나 혹은 스승 같은 존재에요. 위로를 많이 받아요.
-어떤 위로죠?
-나에게 어떤 문제점이 생겼을 때 실마리를 제시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나의 비밀스러움을 누구 보다 많이 공유했고 이해하고 나누고 있는 사람.
-그 비밀스러움, 나에게만 얘기하면 안 되나요?
(이 무슨 유아적인 발상인가!)라고 연희는 생각했다.
완벽한 날에 금이 가는 것 같았고 많은 것에 흥미를 잃고 따분해졌다.
준호는 이 사소한 연희의 정체를 이해하려고 애써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나의 이 부조리하게 생각되는 독점욕은
위험을 안고 있는 연희의 본질이
보다 우월한 이성을 필요로 하여 언제나 방황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전화기 속의 그 남자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간에 연희를 압도한 것 같았다
(나에게 이런 종류의 남자들이 갖는 매력이 없어 연희를 위로할 수 없다면
나는 참을 수 있을것인가)
준호는 이러한 어리석은 생각을 정말로 믿을 정도로 질투에 몸을 떨었다.
그것은 연희에게 감춰지지 않았고 연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준호는 이성을 마비시켰다.
준호는 연희와 같은 종류의 여자도
생각했던 것보다 원시적인 여자이길 차라리 바라는 수준에 까지 내려갔다.
연희도 숨이 막힐 만큼 포옹받을 수만 있으면
정신적 이해 같은 것은 거들떠볼 생각도 안 하는 여자가 되어주길 소원했다.
준호는 침대가 여자에게 있어서는 정신보다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막무가내의 추락이었다.
준호는 연희를 야만스럽게 정복하고 싶었다.
연희의 안으로 들어가 조금의 자비도 없이 위에서 군림하며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준호뿐이라고 고백하게 만들고 싶었다.
준호는 연희를 으스러질 만큼 꽉 끌어안았다.
연희는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준호에게 갇혔다.
연희의 손이 힘을 잃고 잡고 있던 와인 잔을 곧 떨어뜨릴 것만 같았다.
연희는 고개를 들어 준호를 보았다.
준호의 눈이 분노로 충혈되어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이 같은 모습이라니!
이런 종류의 사람에겐 도대체 어떤 처방이 어울리는 것일까)
그러나 준호의 이런 대담하고 뻔뻔스러운 관능의 맛은
준호의 혀 위에서 얼마동안 남아 있다가는 없어질 것임을 연희는 알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대립의 교착과 상호작용은
두 사람이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데 있어
가장 적절한 정신의 환경과 몸의 체온을 유지하게 만들어주었다.
이처럼 절망이란 얼마나 억센 소망인 것인가!
연희의 영혼이 명령하였다.
준호의 그림자에 나의 그림자를 포개라고.
우리 둘의 숨결과 모든 행동을 그렇게 하라고.
준호는 자기의 입술에 전달되는 연희의 감촉을 가장 섬세한 기질로 느끼며 키스했다.
연희의 마음은 다시 떨려왔고 깊게 준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준호는 포도주의 맛을 음미하듯 조용히 정답게 연희의 온 몸을 탐미하기 시작했다.
준호와 연희의 나날은 아무 장애도 없이 질서 있게 현재에 머물렀지만,
미래는 마찬가지로 평화스럽게 현재를 바라볼 수 없었다.
11월에 의사실기 시험을 앞두고 있었지만 준호는 준비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 점 때문에 준호는 선배 정수와 몇 번의 마찰을 빚었다.
준호는 연희라는 존재를 위험요소로 생각하는 정수에게 불쾌함을 느꼈다.
준호의 삶은 온통 연희라는 존재로 가득 차 있었다.
준호는 자기의 안정된 집과 아들과 착한 아내를 생각해 보았다.
(나의 나날은 얼마나 불행하게 매일 매일이 똑같이 흘러갔던가)
준호는 닥치는 대로 아내를 속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신 온갖 종류의 친절과 봉사를 베푸는 것으로 그것을 보상하고 있었다.
연희는 준호를 사랑했지만 지금도 자기와 준호의 행동을 찬성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행복에 대한 불만감은 잠시도 연희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 순간 손 안에 쥐고 좀 기뻐했는가 하면
곧 해체되어 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수백 개의 불안들이 연희를 괴롭히는 까닭에!
연희가 누리는 행복은 그만큼 의문스러운 것이었다.
(나를 이 광기에서부터 고쳐줄 약이 있을까?
나는 왜 준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 나는 준호에게 있어서
오직 나란 여자 말고는 발견될 일이 없으리라 여겨왔던 하나의 특성,
패배에 돌아서지 않는, 원하는 것에 대한 무모한 열정에 매료된 것 같다)
많은 종류의 남자들로부터 연희가 지금까지 냉담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열렬한 구애가 연희의 가치관 안에서 비웃음을 살 만큼
너무도 흔한 패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젠틀하고 세련되고 똑똑하고 앞날에 대해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결정적인 하나가 결핍되어 있었다.
그들은 순수하지 못했다.
그들은 연희 앞에 기사도처럼 굴었으며 영웅이 되길 바랬다.
그들은 자기의 약함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얼마간 허세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준호라는 인간은 연희를 사랑하는 것 외에는
보여줄 것이 도무지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준호는 억지스러웠고 자기 외의 남자들에 대해 심하게 질투했으며
그런 자기를 제대로 변호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연희는 이 사람의 이기심은
어른다운 계산이 철저히 배제된 어린아이나 가질 수 있는 철없는 열정의 산물이라 느끼며
매혹되었다.
준호는 자기의 나약함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준호는 허세가 없는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는 것.
이것이야 말로 준호라는 남자가 가진 가장 큰 힘이었다.
준호는 연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준호는 연희의 책장에 꼽혀 있는 많은 종류의 책들을 보며
연희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어두움은 문학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연희씨의 독서 스펙트럼은 참 넓군요.
준호가 연희의 책장에서 하나의 책을 꺼내 들며 말했다.
-그건 아마 내 직업때문일거에요. 사실은 고전을 제일 좋아해요. 와인 오픈할까요?
방금 설거지를 마친 연희가 말했다.
-이리 주세요. 내가 할게요. 고전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책이나 작가는요?
준호가 꺼낸 책을 식탁위에 올려놓고 앉으며 말했다.
-까뮈를 좋아해요. 그 중에서도 페스트. 읽었나요?
-아니요. 나는 소설을 많이 읽진 않았어요. 하지만 삼국지는 열 번 정도 읽었죠.
-정비석?
-아니요. 이문열. 아버지에게서 선물 받았죠.
-음.. 사람의 아들은 훌륭한 소설이죠.
하지만 이문열은 대한의 모든 딸들아 이후 좋아하지 않아요.
그렇게도 계급주의 사회에 편승하길 잘 하는 사람의 머리에서
구로아리랑이나 우리의 일그러진 영웅들 같은 수작이 나왔다는 것이 의하하죠.
지금의 그는 타작소설가에 지나지 않아요.
하지만 이문열의 삼국지는 읽어보고 싶네요.
-나는 페스트를 읽어봐야겠어요. 연희씨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이니까.
-그 소설 꽤 난해할거에요.
연희가 걱정스러움이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희씨 만큼은 아닐거에요.
-그럼 좋아요. 나는 이문열의 삼국지를, 준호씨는 페스트를 읽고 우리 토론하는 거 어때요?
-내가 말로서 연희씨를 당해낼 수 있겠어요? 하지만 좋아요.
준호가 활짝 웃으며 오픈한 와인을 잔에 따라 연희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라쇼몽이네요.
연희가 준호가 책장에서 꺼낸 책으로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읽어줄래요?
준호가 기대와 호기심에 찬 얼굴로 연희에게 바짝 다가앉으며 말했다.
-좋아요!
연희가 기쁜 마음이 되어 즉각 대답했다.
그때에 연희의 핸드폰이 울었다. 친구 지훈이었다.
-여보세요.
-여전사, 안녕하신가. 한동안 연락이 없으니 궁금해서 말이야.
-으응.. 그동안 좀 바빴어. 곧 입시잖아.
연희가 준호의 눈치를 조금 살피며 소곤대는 목소리로 둘러대듯 말했다.
-나도 그동안 눈코 뜰 새가 없었어. 그래도 우정은 지속되는 거겠지?
수화기를 통해 지훈의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인생에 있어 그처럼 모범적인 좌표를 가지고 계신 스승과의 우정을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
-네 목소리에서 밝음이 느껴져서 안심이 된다. 며칠 내로 얼굴 보러 갈게.
-응? 언제 올건데?
-글쎄.. 곧. 또 연락할게.
-그래. 잘 지내렴.
준호의 얼굴은 우울한 불만으로 굳어있었다.
-누구에요?
-친구요.
-친해 보이던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에요. 아니 좋아한다기 보다는 존경해요. 멋진 사람이죠.
준호의 눈빛이 타올랐다.
그 눈빛은 적극적인 질투심을 말하고 있었다.
-그 사람도 연희씨를 친구로 생각할까요?
-무슨 뜻이에요?
연희는 약간 못마땅한 얼굴이 되어 반문하며 덧붙였다.
-지훈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친구에요. 가족과 같은.
나이는 같지만 나에겐 오빠나 혹은 스승 같은 존재에요. 위로를 많이 받아요.
-어떤 위로죠?
-나에게 어떤 문제점이 생겼을 때 실마리를 제시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나의 비밀스러움을 누구 보다 많이 공유했고 이해하고 나누고 있는 사람.
-그 비밀스러움, 나에게만 얘기하면 안 되나요?
(이 무슨 유아적인 발상인가!)라고 연희는 생각했다.
완벽한 날에 금이 가는 것 같았고 많은 것에 흥미를 잃고 따분해졌다.
준호는 이 사소한 연희의 정체를 이해하려고 애써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나의 이 부조리하게 생각되는 독점욕은
위험을 안고 있는 연희의 본질이
보다 우월한 이성을 필요로 하여 언제나 방황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전화기 속의 그 남자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간에 연희를 압도한 것 같았다
(나에게 이런 종류의 남자들이 갖는 매력이 없어 연희를 위로할 수 없다면
나는 참을 수 있을것인가)
준호는 이러한 어리석은 생각을 정말로 믿을 정도로 질투에 몸을 떨었다.
그것은 연희에게 감춰지지 않았고 연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준호는 이성을 마비시켰다.
준호는 연희와 같은 종류의 여자도
생각했던 것보다 원시적인 여자이길 차라리 바라는 수준에 까지 내려갔다.
연희도 숨이 막힐 만큼 포옹받을 수만 있으면
정신적 이해 같은 것은 거들떠볼 생각도 안 하는 여자가 되어주길 소원했다.
준호는 침대가 여자에게 있어서는 정신보다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막무가내의 추락이었다.
준호는 연희를 야만스럽게 정복하고 싶었다.
연희의 안으로 들어가 조금의 자비도 없이 위에서 군림하며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준호뿐이라고 고백하게 만들고 싶었다.
준호는 연희를 으스러질 만큼 꽉 끌어안았다.
연희는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준호에게 갇혔다.
연희의 손이 힘을 잃고 잡고 있던 와인 잔을 곧 떨어뜨릴 것만 같았다.
연희는 고개를 들어 준호를 보았다.
준호의 눈이 분노로 충혈되어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이 같은 모습이라니!
이런 종류의 사람에겐 도대체 어떤 처방이 어울리는 것일까)
그러나 준호의 이런 대담하고 뻔뻔스러운 관능의 맛은
준호의 혀 위에서 얼마동안 남아 있다가는 없어질 것임을 연희는 알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대립의 교착과 상호작용은
두 사람이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데 있어
가장 적절한 정신의 환경과 몸의 체온을 유지하게 만들어주었다.
이처럼 절망이란 얼마나 억센 소망인 것인가!
연희의 영혼이 명령하였다.
준호의 그림자에 나의 그림자를 포개라고.
우리 둘의 숨결과 모든 행동을 그렇게 하라고.
준호는 자기의 입술에 전달되는 연희의 감촉을 가장 섬세한 기질로 느끼며 키스했다.
연희의 마음은 다시 떨려왔고 깊게 준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준호는 포도주의 맛을 음미하듯 조용히 정답게 연희의 온 몸을 탐미하기 시작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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